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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당리성지 신부님 글

찬미예수님!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3-01 조회수 : 152

찬미예수님!


  요당리 성지를 사랑해주시는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요당리 성지를 찾아주신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순시기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사순 시기 많은 본당에서 사순 특강을 합니다. 사순시기를 잘 보내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초청한 신부님이나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신앙에 유익함을 얻는 시간입니다. 이 사순시기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따라 자신도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우리 순교자들을 묵상하는 것도 좋은 사순시기를 지내는 방법일 것입니다. 한국 성인이나 복자들의 전기를 보셔도 좋고 그분들이 ‘보셨던 ‘책’ 들, 곧 번역된 천주교 관련 한역서학서들을 보셔도 좋겠습니다. 각 성인들과 복자들과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는 성지순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위한 ‘특별한 시간’을 남은 사순시기에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어 요당리 성지에서 기억하고 현양하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조카 장치선의 포도청 2차 심문을 계속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저와 임 선생이 함께 조(철증) 주서의 집에 가니, 여자 한 명이 있는데 나이는 4, 50세가량이고 평양 댁으로 불렀습니다. 한창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떤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지자익이 말하기를 “지금 온 사람이 바로 조 주서 철증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철증과) 서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지자익이 말하기를 “배의 장비 및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은 조 주서가 이미 빠짐없이 마련해 놓았으니 너는 빨리 출발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임 선생은 그대로 지자익의 말을 따라 즉시 영종 포구에 가서 보니 작은 배 하나가 포구에 준비되어 있는데 최선일 역시 포구 주변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최선일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작은 배로 큰 바다를 건너 항해하기는 어려우니 이른바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패하는 꼴이다. 대체로 배의 장비를 갖추는데 과연 얼마나 (돈이) 들어갈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최선일이 답하기를 “적어도 5, 6백 냥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인데, (돈이) 나올 곳이 없으니 어찌 해야 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강(칼레) 신부가 돈을 박덕여의 집에 맡겨놓았는데, 이를 먼저 끌어다 쓰면 되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도와주기로 했으므로 제가 즉시 박덕여의 집으로 가서 배가 출발하는 사정을 다 알려주고 (칼레 신부의) 돈을 내주기를 청했습니다.


  박덕여가 저에게 말하기를 “이미 강(칼레) 신부의 편지가 있으니 돈을 내어 쓰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바로 6백 냥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장비를 다시 준비하고서 배를 출발하려고 할 때에 이(리델) 신부가 배에 올라 (같이 가려고 하니) 임 선생이 (자기가) 가는 것이 그리 긴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곧 신창 용당리 포구로 가서 사공인 (윤)치성 및 심순여, 이성의, 이성집, 박복여, 송운오 등 6명과 이(리델) 신부, 최인서, 김영희, 최선일과 함께 재작년(1866년) 5월 8일(양력 6월 20일)에 배를 출발시켜 보름 만에 (중국 산동의) 연태 땅에 도착했습니다. 


  리델 신부가 혼자서 서양 배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서양) 병선(兵船) 몇 척이 오래지 않아 출발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저와 사공 등이 돌아와 (황해도) 장산곶에 도착했고 방향을 바꿔 내포로 간 다음 여러 사람이 육지에 올라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홀로 서울로 올라왔는데, 다행히 동소문(東小門) 안에서 임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다음 함께 성북동의 이연식 집으로 갔습니다. 이연식은 3일 동안 잘 대접해주고 옷 한 벌을 만들어 주면서 저에게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 옷을 입고 지자익의 집으로 갔습니다. 

  지자익이 말하기를 “이번의 여행으로 과연 서양 배가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답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들어갔는데 어찌 요청하지 않았겠는가? 빠르면 한 달, 늦으면 8, 9월에 (서양 배가 올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년 2, 3월 사이에는 반드시 올 것이다.” 고 했습니다. 

  지자익이 말하기를 “매우 좋다, 좋다.”라고 했습니다. 


  이상 다음 달에 이어서 보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