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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1-01 조회수 : 145

찬미예수님!


  고마우신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3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첫 달 잘 보내고 계신지요. 성탄시기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연중시기가 시작되는 이때에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눈이 겨울임을 증언해주듯이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증언해주고 있는데요, 예수님은 바로 성령께서 머무르고 계시는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성호경을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고백합니다. 성부 아버지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성령도 함께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성자께서 성령의 힘으로 활동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성령은 뗄 수 없는 관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려면 우리는 성령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려주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머무르시도록 하여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함은 당연한 말이겠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 안에서 성령께서는 우리 신앙선조들에게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선조들은 성령에 힘입어 예수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셨고 그 힘으로 박해자들의 박해에 맞서 순교까지 이르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의 모습을 살펴봄과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성령께서 어떻게 활동하셨는지를 알아보는 증언을 듣는 일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틈틈이 접하여 우리 민족과 한국 사람들에게 활동하시는 성령을 알아보고 우리는 더욱 예수님께 인도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소개해 드린 장주기 요셉 성인의 조카 장치선에 대한 관변 측 기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치선은 1868년 서울에서 잡혀 우포도청에서 두 차례 심문을 받았습니다. 심문 과정에서 장치선은 자신의 입교 과정과 교회 내 활동 등을 진술했습니다. 특히 1866년 리델 신부를 중국에 탈출시킨 것과 병인양요 때 다시 리델 신부와 중국으로 갔다가 되돌아온 사정을 자세히 진술했습니다. 장치선이 선교사 리델 신부와 행동을 같이 한 점이 주목됩니다.  


<우포도청등록> 장치선 1차 심문


1868년 4월 18일(양력 5월 10일) 죄인 장치선(張致善) 나이 49(세)


  아룁니다. 저는 본래 제천에 살다가 작년 10월쯤에 (서울) 백동(현재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옮겨 살면서 상업으로 직업을 삼았습니다. 


  성교(聖敎, 천주교)는 5세(1824년)부터 양지현 은이(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마을)에 사는 오자현에게서 배웠고 대세를 하고 세례명을 정했습니다. 다 큰 다음에 허다한 경문(기도문)을 보고 외우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서양인은 고(페레올) 주교, 안(다블뤼) 주교, 장(베르뇌) 주교, 세 분 주교 및 박(프티니콜라) 신부, 신(푸르티에) 신부, 이(리델) 신부, 강(칼레) 신부, 권(페롱) 신부, 오(오메트르) 신부, 서(볼리외) 신부, 민(위앵) 신부, 두(杜, 김 도리 신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신부, 백(브르트니에르) 신부 등을 서울과 시골 각 처에서 만나 뵈었습니다. 


  재작년(1866년) 사학(邪學, 천주교) 분란(紛亂, 군난)때에 서울과 시골로 피신했다가 (그해) 9월쯤에 저와 김계쇠, 송운량(宋雲兩, 송운오宋雲五의 오기로 보임), 박복여 등이 신창(新昌) 용당리(龍塘里) 포구에서 배를 띄워 순조롭게 영종포(永宗浦, 현재 인천 중구 영종동에 속한 섬)로 들어가니 서양배 6척이 이미 거기에 닻을 내리고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이(리델) 신부가 우리 배에다 대고 “두려워하지 말고, 급히 와서 배에 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배에 올랐더니 우리나라에서 얼굴을 알던 사람 3명(최인서, 최선일, 심순여)이 이미 배 안에 있었습니다. 3일이 지나자 강(칼레), 권(페롱) 두 신부가 같이 화륜선(火輪船, 증기선)에 올라타서 남해로부터 와서 정박했으므로 (가서)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에 출발하여 먼저 (중국의) 남경과 상해 땅에 들어갔는데, 1년 동안 머물면서 지내다가 우리나라 교우들이 저절로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강(칼레) 신부가 이러한 사정을 알고서 저와 최인서, 김계쇠에게 은자 70냥을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는 본국으로 가서 교우들의 생사와 동정을 살펴본 다음에 빨리 소식을 알려주면 신부 한 사람을 여기서 정해 너희 나라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신부를) 영접할 방법을 약속하고 나서 요동의 천주당에서 (산동의) 연태(煙台, 중국 산동성 연태시) 땅으로 건너왔고, 7명이 뒤에 남고 제가 다만 김계쇠와 최인서를 이끌고 중국 배를 타고 출발하여 (황해도) 장연(長淵) 마읍도(馬邑島) 땅에 내렸습니다. 바로 서울로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금 (정체가) 드러나 붙잡히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차 심문은 여기에서 끝납니다. 다음 달에 이어서 2차 심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