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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01 조회수 : 119

찬미예수님!


  감사와 존경을 드리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무더운 여름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장마가 시작되었지만 한편 가물어서 걱정입니다. 유럽은 40도가 넘는다고 하지요. 가뭄에 폭염에 폭우에 산불에 기후위기가 점점 더 체감되고 있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실천적인 노력을 지속해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는데 한 사회실험 동영상이었습니다. 아빠가 없는 한 부모 가정의 엄마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한강 공원에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목마를 태워달라고 조르지만 엄마는 아들을 목마 태워 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아들이 아빠는 목마를 태워줬는데 엄마는 왜 못 태워주느냐며 말하고 이러한 모자의 대화를 옆자리의 남자 청년들에게 들리게 하고 청년들의 반응을 살피는 영상이었습니다. 엄마가 편의점에 간다고 하고 아들을 이들 청년들에게 맡기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실험을 한 세 곳의 청년들 모임 모두에서 아이를 목마 태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없는 한 부모 가정의 한 가엾은 모습을 옆에서 보고 듣고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실천으로 아이에게 목마를 태워준 것이었습니다. 실험을 실시한 사람들이 말하듯이 세상엔 따뜻한 사람도 많이 있음을 알게 해준 감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후손인 여러분들도 이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에 할 수 있는바 작은 실천을 나누시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셨으면 합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어 장주기 성인에 대한 심문 기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포도청등록>에 있는 1866년 1월 30일(양력 3월 16일) 제천 관아의 심문 기록 보고입니다. 제천 현감 유남규가 제천 지역에서 체포한 장주기 성인을 심문하고 포도청에 보고한 기록입니다. 서양인 신부의 집주인으로 알려진 이경주를 잡지 못하고 대신 장주기 성인을 잡아 심문했는데, 그가 스스로 집주인이라고 밝히면서 배교를 거부하니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하겠다는 내용입니다.   


1866년 1월 30일(양력 3월 16일) 사학 죄인 장주기(나이 64세)


제천현에서의 취조 문목

(질문) “네가 이경주냐? 같은 무리는 지금 어디 있느냐? (답하여) 말하기를 ”(이경주는) 서양인(선교사)이 붙잡힌 날에 바로 도망가서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질문하여) 말하기를 “이(경주)에게 친척이나 아내가 있느냐?” (답하여) 말하기를 “그(이경주)의 아내는 기해년(1839)에 천주교로 체포되어 정배(귀양살이할 곳을 정하여 죄인을 유배시킴)되었다가 배소(유배된 곳)에서 죽었으며 (현재는) 처자식도 없고 형제나 가까운 친척도 없습니다.”


(질문하여) 말하기를 “원션시호(빈첸시오)는 누구의 이름인가?”

(답하여) 말하기를 “이경주의 이름(세례명)입니다.”


(질문하여) 말하기를 “서양인(선교사)의 집주인은 원래 이경주가 아니냐?”

(답하여) 말하기를 “(이경주는) 친척도 없고 아내도 없는 자로서 오히려 서양인에게 의탁했으니 어찌 집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하여) 말하기를 “특별히 같은 곳에 살았다는 것으로 말하면 집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으니 너도 집주인이 아니겠는가? 너는 서양인(선교사)과 더불어 산 게 몇 년이냐?”

(답하여) 말하기를 “십여 년이 됩니다.(같이 산 것으로 따져) 저를 집주인이라고 하신다면 저 역시 집주인입니다. (장주기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저야말로 마땅히 집주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질문하여) 말하기를 “너는 배교를 하겠느냐?”

(답하여) 말하기를 “죽어도 배교할 수 없습니다.”


좌우포도청이(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 서양놈의 집주인 이경주를 체포하고자 포교를 제천현에 파견했는데, 그 (제천)현감 유남규의 보고에 “(이)경주는 도망을 갔고 (대신) 같은 현에 사는 장주기라고 하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엄히 심문했습니다. (장주기의) 진술에서 ‘서양인의 집주인은 본래 이경주가 아닌데(그는) 원래 친척도 없이 도리어 서양인에게 의탁하니 어찌 집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서양인과 더불어 10여 년을 같이 살았으니 마땅히 스스로 집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죽어도 배교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장주기를) 데리고 올려 보내니 자세히 조사하는 일은 포도청에서 다시 살피는 것이 재판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서양인 선교사의 집주인을 본래 이경주라고 알고 찾고 있었던 관아에서 그만큼 중요 죄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서양인 집주인’ 이라는 죄목을 오히려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집주인이라고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죽어도 배교할 수 없다고 하시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결연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환난에 당당하게 맞서시는 성인의 마음을 연약한 우리들의 마음에 청해 봅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