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수없이 세운다. 자신이 세운 계획이 꼭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은 가득 담는다. 그러나 그 계획대로 될 수 없음을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된다. 그래도 계획을 변경하거나 축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확장시키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계획한 것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마 계획이 있기에 조금은 살맛이 나지 않을까. 지난 삼, 사년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에 대한 계획 자체를 세울 수 없었다. 출국을 하더라도 입국할 때 검사를 현지에서 받아야하는 절차와 방법에 어려움이 있어 나처럼 나이가 든 사람은 엄두를 내지 못하지 싶었다. 이제 엔데믹에 가까워 슬슬 눈을 돌리게 되었다. 부지런한 검색을 통해 저비용항공을 찾아냈다. 사년만의 여행계획은 여러 곳을 여정에 포함시키는 욕심을 부리게 만들었다. 출국와 입국의 항공권을 예매하고는 상세한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체력에 무리가 됨을 깨닫고 행선지를 축소하기로 했다.
남편은 부활주간을 로마에서 보내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갑작스럽게 그 말이 떠올랐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몇 도시를 포기하고 남편에게 로마행을 조심스럽게 권했다. 남편은 회사일과 출장으로 어렵다며 겨울쯤으로 미루는 것이다. 남편의 로마행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마 가지 못할 거라면서 내가 예약한 항공일정과 계획을 설명했다. 남편의 로마행으로 파티마에서의 2박3일을 포기하는 거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남편은 로마를 들러 독일출장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나는 구간 항공을 예약하면서 잦은 에러로 대문자, 소문자, 한글로 바꿔가며 몇 시간을 시도해도 되지가 않아 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마 바로 예약이 이루어졌다면 로마의 계획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인 나의 계획은 하느님의 허락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찮은 나의 계획이 하느님이 보시기엔 합당치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칠십 살의 나이에 기회가 많지도 않은데 의미가 부실한 나혼자의 여행계획은 사라졌지만 서운함 보다는 배려가 없었던 계획이었음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목련꽃이 우아하게 빛을 내고 있다. 이제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릴 차례가 되었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아도 차례대로 생성되고 소멸된다. 어떤 조건에도 순서가 바뀌지 않는 지연의 섭리가 감탄스럽다. 고난의 사순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며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며 진한 감동의 스며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