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 3,19 참조) 말씀을 어기고 빛으로부터 숨어들은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거룩한 사순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해마다 사순이라는 절기는 계절이 바뀌어가는 즈음에 시작하게 되지만 마치 첫 단추를 끼우듯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게 되는 시기로 다가오게 되지요. 우리 존재의, 우리 삶의, 우리말과 생각과 행위의 의미를 찾아감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은 곧,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이 그 안에 불어넣으신 당신의 숨결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 숨결이 살아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헛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음을, 그러니 그 숨결이 살아계실 수 있도록 하는 데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 감을 알라는 선언이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이 시기를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올 해도 머리에 재를 얹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셨는지요.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하루가 계속되는 가운데, 하느님이라는 분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아 나가는 사순절의 날들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죄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회개를 바라시니,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 머리에 얹으려는 이 재에 강복하소서. 저희가 바로 재임을 알고,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순시기에 정성껏 재계를 지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재의 축복 기도문 인용)
재의 수요일 전례 안에서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 전 사제가 바치는 재 축복 기도문 중 하나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묵상하면 우리가 사순절을 보내는 동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합니다. 먼저 우리는 참회와 회개에로 이끌립니다. 진정한 회개의 단계로 나아가려면 참회와 성찰이 먼저이겠지요. 단순한 지난날에 대한 반성으로 그치지 않고 마치 본성과도 같이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하느님의 힘으로 씻어내려는 자신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근본 존재를 다시금 새로 인식하고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함으로써(齋戒. 재계를 지키는 일) 점차 생명과 빛으로 조금씩 걸어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 되지요. 이 죽음의 문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생명 빛으로 건너가 예수 그리스도와 닮게 될 것입니다. 사순의 절기가 깊어질수록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마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말씀을 실제로 살아가는 매일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순시기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앙인의 삶 전체가 이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 곁에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많이도 피하고 벗어나려 애쓰는 것도 우리 신앙생활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꼭 금지된 나무 열매를 따먹고 숨어버리는 인간(Adam)의 모습을 닮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묵묵히 가야 할 길임에 분명합니다. 이 과정은 쉽고 편하지 않고 어렵고 고되기에 거룩하며, 그리스도를 닮은 여정이기에 그 자체로 우리에게는 복이 됩니다. 이 사순절,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분명한 현존 앞에 마주하며 이 과정을 살아감에 충실하면 좋겠습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하느님 앞에서라면 본래의 의미를 찾아갈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기쁨을 나누게 될 날을 기다리며, 성지에서 미사와 기도를 정성껏 봉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