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추운 밤이었습니다. 아마 올 겨울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이었던 겨울밤이 아니었나 기억합니다. 산 속 짙은 어둠 속에 빛나는 아기 예수님의 구유는 반짝이고 빛났지만 성지를 드나드는 이들은 잔뜩 움추렸던 날이었습니다. 왠지 모를 걱정 속에 준비하고 시작했던 성탄 밤 미사, 적은 수의 교우들과 함께 성탄 성가를 부르며 드리는 미사가 조촐했기에 오히려 아기 예수님을 맞아들임이 더 소박하고 단순하게 이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제대 앞에 꾸려진 예수님의 자리는 넓지도 크지도 않았고 말 그대로 누울 자리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성지를 찾아 함께 밤 미사를 봉헌한 교우들과 그렇게 ‘작은’ 자리에 누워 계신 가난하신 하느님께 경배하며 거룩함에로 초대받는 이 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후원가족 분들께도 성탄의 복이 내리는 날들이시길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성탄 축제를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새해를 맞이하게 되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지나가는 연말과 새해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늘 성지에 찾으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인데, 스스로를 돌아봄은 우리를 살아있게 해주는 소중한 작업이기에 놓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다시 살피고 음미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거룩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이 즈음이 되면 모두가 그 ‘돌아봄’ 에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지난 해를 마감할 때에도 저마다 그러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마다 처해 있는 현실 안에서 조금씩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어떠하셨는지요.....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성찰해 볼 수 있는 ‘돌아봄’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하느님’입니다. 곧 ‘돌아봄’의 기준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내가 그 속에서 어떤 결과를 맞이했고 그 일은 어찌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은 펼치셨는가? 나를 통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 나는 그 속에서 얼만큼 내어드렸는가? 그 하느님의 일은 지금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되는 일말입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주어지는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어찌 채워나갈 것인가를 또한 말해주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때마다 하느님의 손길은 우리에게 미치고 그 섭리 안에 충실히 머물러야 함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앎을 실천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일들이 아니라 내적으로 내게 미치는 성령의 이끄심에 기울어지기 위해, 우리는 한 해의 시작인 지금 이 새로운 기준으로 다시 성찰하고 다짐했으면 합니다. 그러할 때 올 한해는, 겉으로 주어지는 많은 굵직한 사건들을 잘 해결해 가는 것만이 아니라 속으로도 꾹 채워져 가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한 해가 지날 때 안타깝지 않을 것이라 희망해 봅니다.
한 해 동안 성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정성을 모아 주신 모든 후원 가족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주님 안에 복을 누리시고 평안하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추위 속에 건강 유의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강복하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시편 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