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예수님을 대면한 기쁨에 마냥 설렘으로 가득한 요즘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22년이 아쉬움만 남긴 채 사라져가고 있다. 항상 그랬듯 새해에 대한 기대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새로움으로 시작하는 2023년도를 그려본다. 시간이 흐르며 불필요한 것들이 하나 둘 나를 향해 달려오겠지만 어쨌든 새롭게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어린아이의 계산되지 않은 순수와 맑은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은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주인공은 여든 살을 갓 넘겼다.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사망기사에 눈길이 갔다. 누구는 언제 사망했으며 생전에 소외된 사람들을 돌봄으로 헌신했고, 누구는 다정한 사람으로 주변사람들이 오래도록 그리워 할 것이라는 대부분 좋은 사람이었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그렇다면 나는? 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망기사에 몰입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죽음 이후 신문에 장식될 기사는 어떤 것일지, 자신이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 사람임을 기사화 시키려고 사망기사전문 기자를 만난다. 자신과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의 명단을 기자에게 전하며 사망기사를 미리 작성하기를 요구한다. 기자는 건네받은 명단의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다들 공통된 말은 괴팍하고 강한 성격에 남에게 상처를 주며 못되게 살더니 죽었네, 였다. 주인공은 기자의 제안에 따라 사회봉사를 시작하며 반항아인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아이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뭐라도 되겠지요. 하느님이 나를 세상에 내보낼 땐 뭐라도 되라고 그런 거 아니냐고 차갑게 대답한다. 주인공은 여자애를 만나며 조금씩 사랑의 눈으로 대하며 아이와 가까워진다. 그 아이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보게 된다. 모순적인 자신을 버리게 되어 선하고 배려하며 살다가 자는 듯 고요히 눈을 감는다. 주인공의 장례식에서 기자는 울먹이면서 낭독한 추도사에서 몹시 그리울 것이라고 한다.
새 해는 지나온 삶에서 맹렬히 살기위해 붙어버린 위선과 이기를 벗겨내고 선하고 정의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나날이기를 바라며 발짝을 떼어야겠다. 이런 의지라면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