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이 왔습니다. 요즘은 눈을 많이 반기지 않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내심 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눈은 세상과 함께 삭막해져버린 우리 마음에 따스함과 즐거움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눈처럼, 예수님께서 하늘을 떠나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로써 ‘다 그런 것, 늘 그래왔던 것’ 대신 ‘새롭고 놀라운 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시작이 여러분 안에서 완성되기를 희망하며, 기도합니다.
이번 달은 도리 신부님의 다음의 말씀을 함께 묵상했으면 합니다. ‘이제 떠나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작별을 고하라고 하십니다! 다음 달 15일, 저는 조선 선교를 위해 길을 떠납니다. 조선은 제가 모든 선의 적들과 맞서 싸우게 될 전투지로 저의 장상들께서 선정하신 곳입니다.’ 도리 신부님은 프랑스를 떠나 조선에 왔습니다. 또한 안주에 대한 유혹,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떠남으로써, 우리가 복음과 성사의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신 도리 신부님의 믿음과 희망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또한 그 놀라움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재촉하는 이 새로움에 따라 움직여 봅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뒷걸음질 치게 됩니다.
왜 그럴까? 이를 고민하다가 문뜩 어렸을 때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미숙하지만 그 때는 더 미숙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시절을 ‘비교와 절망’ 속에서 보내고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알아가는 기쁨과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즐거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어떤 일을 하다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발견하면, 그대로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어머니나 아버지께 뛰어가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식과 지혜, 용기와 힘을 얻어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고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배우는 사람에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받는 사람에서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면 지금도 그런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느새 생겨버린 자존심과 고집과 아집으로 인해, 또 그것들에 너무 의지하게 된 현실에 갇혀, 묻지도 못하고 도움을 얻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 앞에서 어찌할 바를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철부지와 같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합니다. 성인들은 철부지였고 늘 그 자세를 견지하였습니다. 곧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분을 잊지 않았고 늘 자신을 떠나 그분께 온전히 의탁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과 함께 하며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풍요롭게 되었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기쁘고 즐겁게 이루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저앉은 사람들을 일으켜 주는 사람,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주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이들의 충실한 협력자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성인, 곧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인들에게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계와 부족함은 우리의 현실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의탁 안에서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믿음과 의탁은 많은 희생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당연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언제나 사랑받고 또 그분의 품에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언제나 뛰어갈 분, 곧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 용기와 힘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자신을 떠나 그분께로 뛰어 듭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녀만이 누리는 이러한 특권 안에서 거듭나고 또 거듭나는 기쁨과 행복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그러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마지막’이라는 말 앞에 인간적인 아쉬움과 유혹과 소음들이 커지는 때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언제나 기쁨 충만하시길 빕니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