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빛!
나무의 이파리들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땅은 태양빛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주던 존재를 잃게 되었지만 대신 자신을 포근히 감싸줄 새로운 친구를 얻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께서 가져다주신 은총과 그 은총이 우리에게 이루어 줄 새로운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이번 한 달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묵상하며, 그로써 드러나는 불멸의 희망을 더욱 키워나가시길 기도합니다.
이번 달은 위령성월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때입니다. 또 그러한 기도 안에서 죽음을 묵상하며, 우리에게 이루어지려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불멸의 희망으로 자신을 채우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죽음은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계속해서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곧 식물이나 벌레의 죽음으로부터 친근한 동물들은 물론, 누군가의 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무수한 죽음들 앞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서로 다릅니다. 이는 죽음에 대한, 또 죽은 존재에 대한 가치와 사랑, 이해와 비중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름은 몰이해를, 몰이해는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오며, 죽음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일을 더욱 어렵고 힘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방해는 죽음 너머의 것을 불투명하게 하며, 우리의 믿음과 희망을 약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세속적인 판단보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고 느끼게 할 ‘볼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면 그 ‘볼 눈’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잠시 오메트르 신부님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애쓰며,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절대 어긋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저는 기쁩니다.’ 오메트르 신부님처럼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합니다. 그들의 그러한 모습은 종교적 광기에 휘말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허무와 폭력, 자아도취나 염세주의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 헌신과 베풂, 나눔과 친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종교적 광기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드러내 줍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이루어지려는 하느님의 뜻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또 더 나아가, 죽음을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일’로 이해하고 믿게 됩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당신의 나라로 맞아들여지는 사건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에게 죽음은 도전이고 시련이며, 믿음의 내딛음이고 희망의 도약이자, 사랑으로의 뛰어듦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순교자들은 자신의 죽음이 하느님의 뜻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스리고 믿음을 굳건히 하며, 사랑을 충실히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의 하느님의 진정한 벗이 됩니다. 이러한 점은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또 죽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우리의 삶을 참된 완성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죽음 너머의 것을 믿게 되며,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 죽음을 건너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더 이상 죽음은 두려운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과 그에 따르는 기쁨과 행복의 완성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알게 하고 그 너머의 것을 보고 믿고 희망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가 될 수 있도록 합시다.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늘 하느님 말씀의 이루어짐 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길, 천상교회와 일치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성지의 모든 봉사자들과 함께 사랑을 보냅니다. 화답 대신 연옥의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