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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성지 신부님 글

삶과 죽음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1-01 조회수 : 227


가을의 정취와 함께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가족 친지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의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교우들과 성지를 찾아 머무르고자 하는 이들의 순례도 이어져 가득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만큼 미사 시간에 빼곡하게 가득 찬 교우들과 우렁찬 성가 소리, 그리고 십자가의 길 동산을 채우는 걸음들과 조용히 거닐며 바람과 풍경을 담는 이들까지.....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참으로 소중한 여정입니다. 어느덧 또 한 달이 지나가 버림이 놀랍지만, 그 한 달을 풍요롭게 채웠던 소중한 이들의 여정길에 걸음마다 하느님 은총이 묻어났기를 소망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건강히 잘 계셨는지요. 묵주기도 성월을 지나 죽은 이를 기억하는 달을 새로이 시작합니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보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의 끝에서 우리 모두 신부님의 순교영성을 본받고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의 면면을 살피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이 그분의 순교, 즉 죽음인데요, 한 가지 아주 인상 깊게 다가오는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기 감옥에 있는 스무 명의 사람들은 아직 주님의 은총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편지글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공을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순교, 곧 죽음의 문 앞에서 신부님의 모습은 의연함에서 그치지 않고, 남겨질 이들에게까지 전하는 영원함으로의 초대까지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분임을 깨닫게 합니다. 무언가에 짓눌리거나 매어 있음이 전혀 없는, 참으로 자유롭고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참 사제이신 분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과연 크게 다가옵니다. 안드레아 신부님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한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고난의 끝이 아니었고, 염려하고 불안해할 알 수 없는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의 것, 그리스도께서 가신 죽음과 부활이라는 문으로 동참하여 들어가는, 그것도 아주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통과하고자 하는 좁은 문’(루카 13,24 참조)이었음을 봅니다. ‘많은 사람이 들어가고자 하겠지만 들어서지 못할 좁은 생명의 문이기에 남겨지는 교우들을 독려하며 천국의 시민으로 나서 굳건하게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사제 안드레아. 이 분을 통하여 죽음이라는 신비에 진지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실제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으로서만 다가오지 않는 듯합니다. 매일 이어지는 일상 안에서 죽음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우리에게 어느덧 스며들어와 우리를 거기에 연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마치 죽음과도 같은 삶의 시간들도 있게 마련이고 온전히 스스로가 감내해야 할 십자가도 그와 비슷한 형태로 불현듯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삶과 죽음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을 깨닫고 그분의 영원한 현존 앞에 마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주하지 않고 옆으로 빠져 객체가 되어 외면하려 하거나 외적인 것들에만 연연하거나 피하려고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뿐더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죽음이라는 신비를 통해서도 삶의 선물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다시금 떠올리고 또 기억하고 새기어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의 시간들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희망해봅니다. 특별히 이미 하느님 품으로 먼저 가신 영혼들을 기억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이때에, 영혼의 안식처인 이곳에서 연령을 위한 미사를 정성되이 봉헌하겠습니다. 함께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