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지난 여름 잘 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느덧 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는 조금 선선해졌습니다. 그리고 더위가 꺾인 것과는 반대로 세상에는 희망과 결실들이 한 뼘 더 솟아올랐습니다. 이러한 모습들, 곧 어김없이 찾아오는 질서와 변화는 하느님의 지혜와 권능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실 일, 우리를 위한 영광과 행복과 구원을 감지하게 하며 희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달은 함께 하느님의 섭리를 묵상하고 충실히 따르며, 그분께서 마련하시고 이끌어주시는 놀라운 기쁨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시간들을 보내시길 빕니다.
어느덧 9월이 되었습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로 하느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영광의 월계관을 쓰신 신앙선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는 달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맘때가 되면, ‘순교가 꼭 필요했을까요? 하느님께서 이를 막아주실 수는 없으셨을까요?’라던 어떤 분의 물음이 종종 떠오릅니다. 그 질문에 대해 저는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대답을 내놓았었습니다. 그저 배운 대로,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을 빌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 되었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믿음에 대한 결과만을 이야기했었습니다. 만일 그때 ‘하느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한다 하더라도 타당한 이유 없이 그런 일을 만드시거나 일이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라는 오메트르 신부님의 외침을 알고 이를 충분히 공감할 만큼 성숙했더라면, 일어났던 일만 바라보며 의문에 빠지게 된 그분을 신앙인의 눈과 믿음으로 초대하며, ‘앞으로도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지 않을까?’하는 반성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그렇게 성숙한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오메트르 성인의 외침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살다보면, ‘이건 좀 불필요하지 않나? 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두고 보시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그 시간이 지나거나 성숙해지게 되면, ‘그런 것도 필요했으며, 하느님께는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라던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의 삶이 우연과 그것들의 겹침 속에서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 위에서 인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일찍부터 이를 통찰하신 오메트르 성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골머리를 썩기보다 믿을 수 있는 것에 자신의 열정을 더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하느님의 놀라우신,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자신 안에서 이루게 됩니다. 곧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 피하고 싶은 것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게 하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이 새로운 달을 시작하며, 우리는 이러한 오메트르 성인의 자세를 본받았으면 합니다. 무조건 아무 생각 없이 믿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릴 수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더 중요하고 우선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처럼, 우리는 믿음으로써,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느님의 계획에 참여하게 하며, 이 참여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결실을 맺게 합니다. 그리고 이 결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섭리 전체를 관통하게 하며, 그로써 그분의 뜻을 깨닫고 알게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놀라우심을 믿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며, 참된 이해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불필요하고 피하고 싶었던, 또 이해되지 않고 기피하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요긴한 것이 되게 합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분께서 준비하고 마련하신 구원에 이르는 영광과 기쁨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그와 함께 점점 일교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몸 관리 잘하시면서 건강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건강 안에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며,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합시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