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라는 말보다 ‘푹푹 찐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요즘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낮에는 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나가보면 생각보다 견딜만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걱정을 앞세우고 주저하며, 현실과 하느님의 일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신은 금물이지만 자신과 하느님을 조금 더 믿고 현실과 하느님의 일에 뛰어든다면, 분명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벗어나 놀랍고 신비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달은 덜컥 든 걱정보다 자신 안에 있는, 또 가져야 하는 믿음에 따라 행동했으면 합니다. 그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에게 여는 건강하고 활기찬 여름 되셨으면 합니다.
신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믿음에 따라 행동하며 하느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한계와 주어진 현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주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혹여 이러한 주저함이 마음에 있다면, ‘저는 미천한 도구에 불과합니다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도구가 미천할수록 하느님께서는 더욱 찬미 받으실 것입니다.’라고 하신 도리 신부님의 고백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목은 도리 신부님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도리 신부님도 우리처럼, 하느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미천한 현실, 또한 선교의 어려움과 그에 필수적으로 따라 붙는 죽음이 만드는 여러 물음과 두려움들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에 대한 깊고 진중한 성찰 안에서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되었으며, 선교의 어려움과 죽음도 꺾지 못하는 하느님의 위대한 뜻을 보고 감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이러한 대답을 내놓았고 그에 따라 사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선교지에 펼쳐질 하느님의 뜻을 모두 드러내며, 그에 따르는 기쁨과 영광을 얻게 됩니다. 또한 그와 함께 신앙의 결실들을 지금까지도 거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리 신부님의 모범은 무엇에다 자신을 맡겨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우리는 한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 앞에서 걱정과 두려움을 갖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저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은 믿음으로 그 걱정과 두려움을 딛고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고야마는 하느님의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우리를 더욱 더 하느님의 것이 되게 하며, 그분과 같은 영광과 기쁨을 얻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리 신부님의 모범을 기억하며, 그분처럼 자신에 대한 깊고 진중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를 잘 해내게 된다면, 더 이상 자신을 믿는 과신에 빠져 하느님을 도구로 삼는 일도, 아무 것도 믿지 못하며 두려움에 자신을 잃는 일도 없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될 것이며, 자신의 한계나 자신 앞에 놓인 현실과 어려움도 어찌하지 못할 하느님의 위대한 뜻과 능력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손에 합당한 도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더 내어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위대한 뜻과 자신에게 약속된 모든 것을 이루는 기쁨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도리 신부님의 모범을 본받아 자신에 대한 깊고 진중한 성찰을 하며,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겸손한 앎으로 무장합시다. 그리하여 문뜩 든 마음과 생각에 자신을 휘둘리며 두려움에 빠지는 대신 하느님의 위대하신 뜻에 자신을 맡기고 참여하는 기쁨과 영광을 누립시다.
날이 많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문명의 이기의 도움에 의지하게 되지만 종종 ‘앗 뜨거워, 앗 뜨거워, 주님의 사랑’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느님께서 날 이렇게 뜨겁게 사랑하시는구나.’하며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그 열기가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덥지만 더운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느끼며 새로운 여름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