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는 계절과 왠지 잘 어울리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성지의 모든 가족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폭우와 무더위에 별 일 없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전국적인 난리였던지라 성지에서도 어수선한 몇 주간을 보냈습니다. 산 속에 있는 주변 마을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되어 그저 걱정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마음으로 성지의 곳곳을 다시 보수했습니다. 다행히 성지 내에는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그만큼의 큰 피해는 없지만,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찾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 큰 상처 없이 제 자리로 돌아오셨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청해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어오는 찬 바람에 깜짝 놀라며 새삼 ‘때가 왔구나!’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무언가 ‘책임감’ 이라는 것이 저에게 주어짐을 느끼게 되는 때입니다. 아마도 성지 신부로 부임하게 된 이후 더 명확히 갖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저에게 주어지는 그 ‘책임감’은 부담으로서 다가오기보다 오히려 저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그것은 바로 순교자들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들, 곧 순교의 열매입니다. 저에게 ‘책임감’으로서 다가오는 그것을 조금 구체적으로 풀자면, 그 중 하나는 바로 ‘인내(忍耐,patiencia)'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다가오는 책임감이라고 했지만, 사실 신앙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전달되는 순교의 열매인 것이겠지요.
순교자들로부터 ‘인내’라는 열매를 얻게 된다고 하면, 하느님께 향하는 순교자의 인내를 먼저 떠올리게 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반대의 것이 먼저입니다. 인간에게 향하는 하느님의 인내. 그것이 먼저였기에, 순교자들은 거기에서 흘러 나오는 힘으로 순교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기껏 백 년이지만 영면의 시간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바다의 물 한 방울과 모래 한 알처럼 인간의 수명은 영원의 날수 안에서 불과 몇 해일 뿐이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당신 자비를 쏟으신다.”(집회 18,9-11)
이 말씀을 묵상했을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을 떠올려봅니다. 자신에게 향하는 하느님의 변함없는 충실과 인내가 있기에 비로소 자신이 영원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감에 역시 충실할 수 있음을, 그것을 깨달아 인내의 열매를 맺은 이는 곧 위대한 ‘순교자’가 되어 우리에게 그 성문(聖門)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라고 하는 순교의 열매는 우리가 하느님께 가져야만 하는 당위로서 주어진다기보다,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선행될 때 맺어지는 것입니다. ‘두려운 나머지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으니 도로 받으십시오.’(마태 25,25참조) 했던 한 종처럼 되지는 말아야겠지요. ‘인내’라는 열매를 통해 ‘순교’라는 문으로 들어서는 주님의 초대를 내치지 않으며,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마태 25,21.23참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하기에 참 좋은 절기를 맞아 새 마음을 갖추고 성지에도 방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선해질 날씨 속에 또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