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감사드리는 요당리 후원회 형제, 자매님, 순례자 여러분 더운 여름 건강히 잘 지내셨습니까? 서울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물난리가 나고 다른 지역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비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한편으론 폭우지만 다른 한편으론 유럽과 미국에 강이 메말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극심한 가뭄인 것이지요. 매번 이상기후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관심과 알맞은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말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시는지요? 강론을 준비하다가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기도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도할 때 가장 흔한 어려움은 분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 분심을 몰아내려고 쫓아다니는 것은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저 우리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분심은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므로, 이것을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깨달으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우선적인 사랑이 일깨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 우리 마음을 결연히 바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교리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실 때에 분심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우포도청등록>에서 장주기 요셉 성인을 두 차례 심문한 기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심문에서는 재판관이 제천 현에서 제출한 진술서를 확인하고 일의 전말과 동료 신자를 대라고 했으나 장주기 요셉 성인이 이를 거부했습니다. 두 번째 심문에서는 재판관이 배교하라고 했으나 장주기 요셉 성인이 결사코 거부했습니다. 이에 포도청은 의정부에서 논의해서 장주기 요셉 성인에 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1866년 2월 7일(양력 3월 23일) 사학 죄인 장주기, 나이 64세. 세례명 요셉.
진술(기록). (질문)“너의 사학(邪學: 천주교) 관련 사정은 이미 제천 현에서 진술한 진술 문건에 나와 있으니 다시 질문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일의) 전말과 (서로) 호응한 자에 대해 무엇이 아까워 바른대로 아뢰지 않느냐?”
(답하기를) “원래 전말이라는 것도 없고 호응한 자도 없으니 죽더라도 바로 아뢸 것이 없습니다. 잘 헤아려 처리해 주십시오.”
같은 날(2월 7일<양력 3월 23일>)죄인 장주기 재심문
재진술(기록). (질문) “너 역시 중생중의 하나로써 이전의 미혹된 것을 버리고 지금 한 마디 (천주교를) 배척한다는 말만 하면 (원래대로) 돌아가 농상(農商)의 일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잘못을) 고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며 스스로 성세(聖世)의 평민이 되는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답변) “저는 본래 수원 태생으로 을사년(1845)에 제천으로 옮겨와 살면서 배우고 익힌 것이 곧 대군대부(大君大父)의 성교(聖敎)입니다. 비록 만 번 형벌 아래 죽더라도 만 번 (하느님을) 배척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모든 처분을) 달게 받으며 늦었지만 (모든 죄를) 인정합니다. 잘 헤아려 처리해 주십시오.”
사건 조사서
대략 죄인의 진술은 이와 같습니다. 신들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군주의) 덕과 뜻을 우러러 보아 하루 종일 타이르고 혹독한 형벌까지 행하여 반드시 그 마음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칼과 톱을 (받는 것을) 마치 즐거운 곳에 이르는 것처럼 여겨 한 마디도 변한 게 없고 마치 절개를 세워(굽히지 않는) 자와 같습니다. 하늘이 만물을 낳아서도 이처럼 참혹한 바가 없으니 이미 법에 따라 처형한 놈들과 조금도 다른 바가 없었습니다. 의정부에 명을 내려 논의하게 할 일입니다.
장주기 요셉 성인은 제천 현에서 체포되었을 때에 관련된 신자들이나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일절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죽더라도 말할 것이 없다고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는 다른 교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주교를 배척하기만 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회유 앞에서는, 배우고 익힌 것이 천주교의 가르침이라며 만 번 형벌아래 죽더라도 만 번 하느님을 배척하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굳건한 믿음입니다. 포도청의 관리들이 하루 종일 타이르고 칼과 톱을 사용해 혹독한 형벌까지 행하였지만 마치 즐거운 곳에 이르는 것처럼 여겨 한 마디도 변한 게 없고 절개를 세워 굽히지 않는 자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고문의 고통이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한 공덕이며 길이라 생각했기에 그리 했을 것입니다. 이미 법에 따라 처형한 이들과 조금도 다른 바가 없다는 말에서 앞서 고문 받고 순교한 순교자들도 이와 같았음을 알 수 있어 그분들의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요당리 후원회 형제, 자매 여러분과 순례자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장주기 요셉 성인의 굳건한 믿음과 천국을 향한 즐거움이 충만하시기를 성지에서 기도드립니다. 더운 여름 건강 유의하시고 코로나도 방심하지 마시고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달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