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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농성지 신부님 글

어농지기 이야기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01 조회수 : 224

찬미 예수님~!

 

여러분, 드디어 삼복더위의 중심에 들어섰습니다. 여러분도 기쁘시지요?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농신부가 드디어 더위에 맛이갔나 생각하실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저도 더위를 꾀나 싫어합니다. 하지만 삼복더위만 잘 이겨내면 곧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을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저에게 기쁨을 줍니다. 이렇게라도 무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버텨나가야지 어쩌겠습니까? ㅎㅎ

 

우리 어농성지에서 현양하는 한국 최초의 선교사제 주문모 야고보신부님은 새남터의 1호 순교자이십니다. 그리고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밀사가 되신 윤유일 바오로’ ‘최인길 마티아’ ‘지황 사바순교자님들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네 분의 순교자 모두 시신이나 유해를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성지에 가묘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농성지에 실제로 묻혀계신 순교 복자님이 있습니다. 바로 윤유일 바오로의 친동생 윤유오 야고보입니다.

 

윤유오 야고보는 경기도 여주의 점들(현 여주시 금사면 금사리)에서 태어나 인근에 있는 양근 한강개(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로 이사해 살았다. 일찍부터 형 윤유일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된 야고보는 고향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이웃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데 최선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795년 을묘박해 때 형이 순교한 후 인근에 살고 있는 조동섬 유스티노’ ‘권상문 세바스티아노등과 만나 기도모임을 갖고, 교리를 연구하는 활동도 이어갔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각처에서 신자들이 체포되고 순교할 때, 윤유오 야고보도 양근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관아로 압송되었습니다. 하지만 갖가지 문초와 형벌을 당하면서도 절대로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관장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배교를 거부하였다. 윤유오 야고보의 마지막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형이 가르쳐준 십계명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서적을 밤낮으로 외우고 익혔으며, 진심으로 배교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결국 관장은 윤유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21년 전 427, 양근 관아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큰길가로 끌려 나가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형을 따라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었으며, 예수님과 함께 순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윤유오 야고보 복자님과 함께 살아가는 어농의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농지기 박상호 바실리오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