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며 점점 더 습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공기는 무거워진 것 같고 세상의 열기도 몸에 더 많이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노력으로 이를 벗어나 시원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죄가 우리에게 더 달라붙으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져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따라,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시원한 평화와 자유로운 행복을 누리는 날들을 보내시기를 빕니다.
이웃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신의 삶을 성찰하다 보면, 불필요한 것들 속에 짓눌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늘 자유롭고 싶어 하며, 또 그런 줄 알고 있지만 실상 어느새 자신에게 달라붙은 것들에 짓눌리고 끌려 다니고 있는 자신을 말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것을 떼어내려고 자신을 흔들어 보지만 어느새 그것들에 홀려 이끌립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는 것 같고 내가 아니게 된 것만 같은 혼란스러운 마음만 짊어지게 됩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오메트르 신부님은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겨주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그분 자신의 영광과 당신의 행복을 위해 당신을 창조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당신이 그분을 알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그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목표입니다.’ 사실 이는 신부님의 친구인 뻬리삭이 차부제품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려 하는 것을 알고 다정하면서도 강권하게 그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건넨 말입니다. 뻬리삭에게서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부르심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우리에게 들러붙은, 또는 우리 스스로 붙잡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오해와 오류는 우리가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불필요한 것들에 홀려 있고 그것들의 속삭임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 의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러한 것들에 계속 홀리고 마음을 빼앗기는 한, 그것들의 무게에 계속 짓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메트르 신부님의 말을 되새기며, 자신에게 들러붙으려는 것들 대신 해방을 가져다주는 은총에, 우리를 홀리는 소리 대신 풀어주려는 말씀에 믿음으로 의지하고 의탁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은총으로 자신을 되찾고 진리로 자유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던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의 행복이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의 행복은 적대적이지도, 갈라져 있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셨기 때문이며, 우리의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뜻의 이루어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도 이루고 자신의 바람도 채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 곧 세상의 것과 함께 세상을 있게 한 놀라움, 인간적인 것과 함께 하느님의 것, 삶에 필요한 것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충만한 풍요 안에서 더 이상 불필요한 것들을 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느님과 같은 행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 생활하고 그분의 영광과 자신의 행복을 이룩하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합시다. 그리고 참 행복을 이루며, 우리에게 달라붙어 짓누르고 숨 막히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기쁜 날들을 보내도록 합시다.
많이 더워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잘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또 그 에너지와 건강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찾고 성실히 지켜나가시길 권합니다. 육신의 건강만은 더위를 버티게 할 뿐이지만, 하느님의 뜻의 이루어짐, 곧 사랑은 더위를 잊고 즐거움과 행복만을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실천하며, 우리 각자의 하루하루가 버티고 견뎌야 하는 날들이 아닌 살고 생활하며 즐기는 날들이 되시길 빕니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