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간이 짧게 느껴지더니 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해가 길어졌다 싶었는데 벌써 더움을 느낍니다. 돌아보니 올 해도 이미 절반을 살았습니다. 예수성심성월을 보내며 성지에 오시는 분들과 그 성심에 물들어 가는 일에 대해 나누었고 스스로도 부족한 애를 썼음이 부끄러운데 다시 또 새 달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쉬움에 푸념을 자신에게 늘어놓게 되는 저를 봅니다. 늘 마찬가지겠지만, 조금 더 발걸음에 힘을 내도록 나를 인도하시는 분께 기운을 청해야겠습니다. 성지의 모든 후원회원과 봉사자 여러분도 무더위 속에서 영적으로도 힘을 내시는 날들이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하겠습니다.
얼마 전 문득 성지순례를 다니는 교우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 바가 있습니다. 코로나 정국이 조금 안정되어 풀린 영향도 있지만 성지순례 책자를 챙겨 다니며 가족 친지들과 같이 계획을 세워 한 군데씩 꾸준히 다니는 분들이 많이 늘어난 듯했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엄마도 만났고, 순례 도장을 찍은 후에 성지 신부님들께 한 말씀씩을 받는다며 펜과 종이를 내미시는 중년의 형제님도 만났습니다. 서로의 짝이 되어 서로를 챙겨가며 소중히도 순례 도장을 찍더니 고운 미소로 인사하시던 한 쌍의 부부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신앙 목표 하에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들이 있겠구나 싶었고, 성지마다 스탬프 도장으로 흔적을 남겨 가는 것 자체도 흥미를 주는 듯싶기도 했습니다. 모두 의미 있는 일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성지는 존재 자체로 거룩함을 드러내고 그곳을 방문하고 순례하는 것은 그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곳을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이 가벼운 발걸음 속에서도 그 한 가지를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순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순례자(pilgrim)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삶의 궁극적인 다다름의 본향(本鄕)이 있고, 그곳을 향해 어제도 오늘도, ‘그날’까지 나아갑니다. 이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문제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들에 부딪혀 혼란스럽게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이 순례의 여정이 멈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것이기에, 우리의 외적 현실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더 크게, 더 멀리 보고 생각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눈앞의 것들로 갈라지거나 분열되어, 저 너머의 것으로 향하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낭패일 것입니다. 흔들릴지라도 가던 길에서 벗어나거나 굴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지 않도록 인간적인 나약함 속에 그분의 힘에 의탁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궂은 장마와 태풍의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지만 많은 후원회원 분들의 기도 속에 있음을 느끼며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찾아올 더위도 잘 이겨내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갈라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