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들어서 단체 순례객들이 몇 팀 오셨습니다. 그중에 인천교구 동창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본당의 꾸리아에서 약 70여분이 오셨습니다. 동창 신부도 왔지요.. 좀 일찍 도착해서 성지 이곳저곳을 안내하다가 미사시간이 되어 함께 제의실로 들어갔습니다. 동창신부에게 주례를 부탁하였습니다. 제의를 다 입은 동창신부가 제의실을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를 보고는, 정확하게는 저의 머리를 보고는 씨익 웃더니, 당연히 없겠구나... 하더라구요... 무얼까요?..
사진속의 인물이 저입니다. 답을 아시겠지요.... 빗이 없겠구나... 한 것이지요.
저에게는 당연하게 없어도 될 물건이 동창신부에게는 당연하게 있어야 할 물건이었던 것이지요. 특별히 미사전에는 꼭 빗을 사용하여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 동창신부였기에 당연히 빗을 찾았는데, 없으니 아쉬워 하더라구요.. 차선책으로 손가락으로 정성껏 정리하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입장을 했습니다.
저도 2006년까지는 제의실에서 빗질을 하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저에게도 당연했던 빗이였는데, 머리카락이 사라지는 덕분에 당연함이 없어진 것이였지요.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배려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이해되고, 소통되는 관계가 될 것이고, 그만큼 더 괜찮은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지의 후원회원분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계실리라 믿습니다. 여러 지향을 두고, 우리 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이 정말 많이 계심을 느낍니다. 이런 분들의 기도가 당연하게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왜, 하느님은 안 들어 주시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하느님께는 아직 그 기도가 당연하게 지금 당장 들어 주어야 할 지향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당연하게 기도의 지향이 이루어졌으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래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궁극적을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나의 당연함이 그분의 당연함과 아직은 만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기도할 수 있다면, 그 기도가 지금보다는 더 지속될 수 있고, 더 지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하느님 편에서의 당연함을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동창신부를 배웅하고, 다음날 빗을 제의실에 비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미사전에 제의를 입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빗질을 합니다. 그러면서 빗은 머리카락이 많은 이들에게는 당연하고 유용한 물건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건강을 살피시면서 잘 이겨내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