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베푸셨고 당신이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베풀며 살라고 하셨다. 그 당부를 수도 없이 하셨다. 그럼에도 외면하고 살고 있는 우리를 보시며 안타깝게 여기셨을 것이다. 말씀만으로 되지 않아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결단을 내리셨다.
아드님을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들 안에서 사시며 구원을 하시려고 하셨다. 일상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 중 비슷하게라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사랑에 인색하여 이기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돋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억누르려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돋보이려고 한 만큼 존재감이 엷어지지 않을지.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가려서 사랑을 베푸시거나 무시해도 되는 권한을 주시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하셨고 존중하셨다.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을 바라신다.
얼마 전이었다. 남편과 사위가 같이 지방으로 출장을 갔었다. 일이 예상했던 보다 일찍 끝나 근처에 살고 있은 시동생을 만났다고 한다. 시동생부부와 식사와 차를 마시고 헤어지려는데 동서가 과일을 가득히 담은 박스 두 개를 주었다. 차 안은 온통 장비로 가득해 간신히 두 사람만 탈 수 있는 공간뿐이었는데. 선물이니 어쩔 수 없이 빈틈을 찾아내 과일박스를 싣고 왔다. 과일을 받은 딸이 제 숙모에게 통화를 하며 왜 이렇게 많이 보내주셨냐며 고마움을 전했다. 동서가 딸에게 사위잖니, 하더라고 딸이 내게 말했다.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동서의 부모님이 무턱 예의범절이 투철하셨다. 아마 동서의 부모님이 사위인 시동생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모양이다. 딸인 동서는 부모님이 사위에게 보여주신 모습을 그대로 내 사위에게 하였던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큰 것이 아닐 것이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움직이며 당신이 보여주셨던 모습을 실천하는 우리를 모습을 기대하시지는 않을까. 사랑은 머물지 않고 움직인다. 사랑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평화를 가져다준다.
녹색의 우거진 아름다운 계절에 하느님과 자신을 묵상하며 조금씩 발짝을 떼기로 다짐을 하다면 하느님께서 기꺼이 도와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