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자유롭다.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6월 인사 올립니다. 6월 한 달도 하느님께서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치료해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코로나 19’가 창궐하면서 허리 협착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하는 걷기 운동을 2년 정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허리가 좋아져서 거의 매일 점심을 먹고 2∼3시간 정도 걷습니다.
양평은 걷고, 뛰고,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점심을 먹은 후 순교지가 보이는 ‘양강섬’을 돌고, 권일신, 권철신 순교자들의 유택지가 있는 갈산을 경유 해서 길게 뻗어있는 강변을 아무 생각 없이 걷습니다. 걷다 보면 꽃도 보고, 비둘기도 보고, 운동하는 어르신들도 보고, 간혹 무더운 날에도 팔장을 끼고 걷는 연인들을 보기도 합니다.
걷는게 좋은 이유는 건강에 좋고, 생각을 정리하고, 단순해지고, 하느님과 함께한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성지에서 가끔 받는 스트레스나, 실존적인 불안과 긴장으로 힘들고 지칠 때 마냥 걸으면 어느새 힘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마음이 굉장히 자유로워집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은 풀이 죽어 예루살렘과 한 참 떨어진 엠마오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그때 낯선 사람과 만나고, 그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날이 저물어 숙소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눌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합니다.
이처럼 걷는다는 것은 우리의 슬픔과 아픔, 실망을 치유하는 내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 매일 걸어 다니셨고, 또 비행 청소년의 재활을 돕기 위한 걷기 프로그램이 성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를 걷느냐입니다. 어떤 사람은 산길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바닷가를 좋아하고, 저처럼 강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도심지를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테메노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왕이 자신을 위해 따로 마련해 둔 토지, 일반인들의 사용을 금지한 성역이었습니다. 왕정 시대에는 왕의 경제적 기반이었으며, 이후에는 신전을 위한 토지로 제한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테메노스’란 고대 그리스에서 희생제의가 치러지던 신성한 공간인 것 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혼자 조용히 머물면서 새로운 자기가 태어나는 공간’을 ‘테메노스’로 표현합니다.
인간처럼 70∼80년을 산다는 독수리도 신기하게 이런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삶의 절정기에 구부러진 발톱과 부리를 뽑아내어 새 부리와 발톱을 다시 갖고 남은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구부러져서 더 이상 사냥하기 힘든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그냥 살다가 생을 마칠까? 를 결정 한다고합니다.
대부분의 독수리는 절벽 끝 바위에 먼저 부딪혀서 부리를 뽑아내고 새 부리가 자라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새 부리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구부러져 못쓰게 된 발톱을 하나하나 뽑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가진 후 독수리는 새들의 왕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독수리가 고통을 감내하며 견디는 인고의 그 시간을 테메노스, 공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거나 상실을 경험하면 조용한 곳,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 혼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런 장소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하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죽음처럼 멈춰 정지하기 위해, 상실처럼 텅 비우기 위해 그런 곳을 찾습니다. 상처 입은 동물은 안전하다고 여기는 장소로 숨어듭니다. 이를 흔히 ‘자폐공간’이라고 부릅니다.
테메노스는 인생의 쓴맛을 보고, 상실을 경험하고, 아프고 힘들 때 찾는 공간입니다. 제가 매일같이 걷는 강변은 저의 ‘테메노스’입니다. 예수님도 힘들고 지칠 때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산으로 가신 것도 자기만의 자폐 공간인 테메노스 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성숙하고, 자유롭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테메노스가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니 성모님도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고 산악지대인 엘리사벳의 집에서 3개월가량 머뭅니다. 이 또한 유대 산악 지방의 엘리사벳의 집이 곧, 성모님의 테메노스 인 것입니다.
칼, 융은 ‘테메노스’를 연금술 용어 ‘헤르메스의 그릇’에서 가져 왔다고 합니다. 헤르메스의 그릇은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용기로, 그 안에 납을 넣고 밀봉한 후 열을 가하면 납에 화학 변화가 일어나 금으로 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릇에 금이 가거나 해서 열기가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면 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연금술 비유에서 중요한 대목은 헤르메스 그릇의 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샹칼파(올바른결심,각오)를 입 밖에 내지 않고 내면에만 간직하는 것처럼, 어떤 경험이나 감각이든 그것을 내면에 조용히 간직할 수 있을 때에만 그것을 자기에게 유익한 성분으로 숙성,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고, 초기 교회 수도사들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사막이나 동굴에서 기도하고, 침묵하며 수행정진 하신 것입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혼자 조용히 머무는 사람은 신비한 지혜에 닿는다.”
노자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테메노스’를 떠 올려봤으면 합니다.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천주교 신자들의 으뜸 테메노스 는 예수님의 몸이 모셔져 있는 조용한 성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금 색다른 ‘테메노스’를 찾는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양평 양근성지로 오십시오. 여기에 정말 근사한 ‘테메노스’가 있습니다.
2022년 6월 나의 사랑 테메노스에서.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
추 신 : 저도 사실 ‘하늘의 왕’ 독수리입니다.
왜냐하면 ‘양근성지에서 온 편지’를 독수리 타법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ㅎ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