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로바 + 붓다 = 그리스도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참으로 부활하신 참 인간이며, 참 하느님이십니다.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와 부활 인사를 나누며, 5월 인사를 올립니다.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참으로 진실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에게는 한 점 거짓도 없고, 속임도 없는 겉과 속이 똑같은 참으로 진실한 분이십니다.
진실성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는 인간의 긍정적 성품입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위선적으로 왜곡하지 않으려는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를 뜻합니다. 진실성은 친밀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의 기반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사람은 신뢰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진실성과 신뢰는 서로 촉진적인 관계를 지니며 인간관계를 심화시킵니다.
진실성은 인간관계만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인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자신에게 진실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잘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 내면의 성숙과 행복의 핵심을 이룹니다. 거짓되고 위선적인 삶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근거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진실성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거짓은 어떠한 의미나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공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진실함 속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실성은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져 왔지만, 진실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부정적인 평가와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하여 깊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의 진정한 동기가 무의식적인 것 이어서 잘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대다수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방어에 의해서 왜곡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학자들은 ‘자기’란 사회적 규범과 요구에 의해서 형성된 일종의 공허한 가면과 역할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진실성은 진정한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자기성찰과 자기수용의 깊이를 반영하는 인격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현대인이 진실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진실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 우울,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유발하는 자기 존재의 진정한 모습을 외면하면서 다른 존재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이데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삶의 모습을 진실하지 못한 실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자기만의 진실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자유와 책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는 다른 방법은 대중의 가치에 영합하는 것입니다. 대중적인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편안하고 안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기 존재의 잠재력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와 잠재력을 포기할수록 ‘이렇게 사는 건 아닌데...’ 하는 실존적 죄책감은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죄책감을 용기 있게 직면해야 한다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사회적인 가치와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단지 대중의 방식을 쫓아가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키르케그로’ 또한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대중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참으로 진실한 인간이고, 참 하느님이십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저는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조로바’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니코스카잔차키스의 모든 작품을 몰래 읽다 과락을 맞은 적도 있습니다. 조로바는 삶을 즐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참인간입니다. 조로바의 애인 ‘부불리나’ 또한 멋진 여인입니다.
예수님도 삶을 즐기며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셨고, 사랑이 많아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중 예수님의 최고의 여자친구는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그래서인지 조로바는 참 인간 예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신부가 되어서 저는 깨달은 인간 부처를 좋아했습니다. 부처는 인간 내면 세계의 왕이고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내면세계의 왕과 신으로서 제 내면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과 사이좋게 싸우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우리의 예수님 또한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내면세계에 있다.’고 하며 밤낮으로 기도하시고 명상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부처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조로바와 붓다를 닮은 참 인간 예수님은 한마디로 힌두교의 피리를 불고 노래하는 크리슈나 신에서 나온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으로서 삶을 즐기셨고,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참 하느님으로서 기도하며, 명상하며 하느님 안에 늘 머문 참 하느님이셨습니다.
이렇게 조로바와 붓다를 닮은 참 인간인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외면과 내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재자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인간으로, 참 하느님으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은 자기 삶에 솔직하고 진실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정 타인과 나 자신에게 진실한지 한 번 돌아보고,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거짓이 아닌 참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할 것 입니다.
사람이 육신의 눈을 감을 때 제일 후회하는 첫 번째는 나는 내가 원하는 진짜 삶, 다시 말해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삶을 진실하게 살았는가? 라는 것입니다.
2022년 5월 진실한 사람이 그리운 날에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