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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성지 신부님 글

사순절의 믿음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3-01 조회수 : 291

- 어느 날 문득 저부터가 무언가를 해내고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으로 그냥 일주일을 허둥지둥 보내고 말았음을 보았습니다. 혼자만의 생각들만 많고 실제 행위로 이어지는 선(善)은 없는 듯, 오히려 쌓여가는 걱정거리들이 거룩한 소명에서 나를 멀리 밀쳐내고 있는 듯하여 괜시리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돌아보건대, 모든 생각들이 온통 나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었음을 보았습니다. 선(善)을 베푸는 일도, 공덕(功德)을 쌓는 일도, 사제직 안에서 소명을 새기는 일도, 하물며 걱정거리들을 헤아리는 일도 모두가 다 ‘나’ 의 것이었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새삼 보았습니다. 거룩한 것, 특히 이 사순절을 보내며 교회를 통하여 또 순교자들을 통하여 초대받게 되는 성성(聖性)을 갖추는 것은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충실히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로 뻗치는 몸짓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들을 향한 움직임은 참으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이루어지는 귀한 일이 될 것입니다. 아주 익숙해져 있는 ‘나’ 중심에서 이웃에게로 옮겨지는 것은 곧 거룩함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일치되기 위해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방편으로, 오늘 하루 소중한 이들을 위해 기도해 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소중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도, 또 우리나라와 저 먼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정성껏 기도해 보십시오. 십자가를 지고 수난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뜻이 우리의 몸짓을 통하여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 해마다 회개 에로 초대받는 사순절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반복되는 자신의 악습으로 인한 죄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말은 아주 피곤하게 들리고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청하지만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더 무겁습니다. 그래서 혼자 별 생각을 다 하게 되지요. ‘모병(毛病)’ 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로부터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악한 행실을 하는 습관을 말하는, 털을 깎으면 또 나고 또 나고 하여 빼버리기 어려운 것과 같다는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된 단어입니다. 털처럼 없애도 또 나고 또 나다 보니, 이것에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 않아지는 일상이 되기도 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하겠는데, 여기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죄의식에 허덕이게 만드는 악순환이 무엇인지는 우리 각자가 잘 아는데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아주 적극적인 노력들은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끌려만 가는 것에 이미 적응해 버린 나약한 육신 앞에서, 나 자신은 무엇을 하였었는지 조용히 먼저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영혼이 어떤 죄에 물들었는지 네 잘못과 네 모병(毛病)을 마치 손바닥 가운데 있는 것처럼 세세히 살펴서 죄의 중(重)함과 죄의 더러움과 죄의 횟수를 명백히 보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죽기를 예비하심이 오직 너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상경>, 정종득 신부 역주, 수원교회사 연구소. 37p)

  적극적인 생각과 노력과 의지로, 또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 드리는 나만의 기도로,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거룩한 성사로 우리는 부활의 빛으로 더 가까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괜히 길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겨울이 지나가고 올해도 어김없이 땅을 깨고 올라오는 초록의 것들은 여전히 반갑습니다. 조금씩 푸릇한 생기를 더해가고 있는 성지에서 인사드립니다. 더 완연한 봄이 되고 부활을 맞게 되면 더 많은 분들 성지에서 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