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지

Home

성지회보
기사

어농성지 신부님 글

어농지기 이야기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2-01 조회수 : 267

찬미 예수님!

어농성지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가족 여러분께 하느님의 자비와 평화를 빕니다. 설 명절을 지내고 입춘도 찾아왔으니 이제 겨울의 끝자락에 들어선 것이 맞겠지요? 그런데 요즘 추운날씨와 매서운 바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 조심! 감기 조심! 불 조심! 잘 알고 계시지요?^^

이번 명절을 앞두고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개신교 신도들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죽은 사람에게 절도 하지 않으니 명절에 제사나 기일에 제사를 전혀 준비하지 않는가? 그럼 개신교 집안과 결혼한 자매님들은 참 편하겠구나. 제사를 지내는 집안과 결혼한 자매님들은 개신교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정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개신교가 부러우신가요?

저희 집은 매년 제사를 준비하고 지냈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께서 시장이나 마트를 여러 번 가셔서 재료들을 구입하시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솔직히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 그리고 남자들은 제사 준비에 바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음식이 다 준비되면 상을 꺼내고 향을 피우고 제사를 올리는 것이 남자들의 임무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배웠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멈춘 순교자들이 계십니다. 바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순교자이십니다. 윤지충의 어머니 안동 권씨는 권상연의 고모입니다. 따라서 윤지충과 권상연은 내외종간입니다. 윤지충은 과거공부를 위해 한양에 머물 때 김범우로부터 ‘천주실의’와 ‘칠극’을 빌려 읽었고, 1787년 이승훈으로부터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근방에 살던 외사촌 형인 권상연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 어농성지에서 현양하는 ‘윤유일 바오로’ 복자님이 북경을 다녀온 후 조상제사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지고 이를 처음으로 실천한 분들이 윤지충과 권상연 순교자인 것입니다. 당시 조선 양반들은 4대까지 조상 제사를 지내며 지극한 효를 학문의 기본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정조 15년) 조상의 제사를 폐지하고 그 신주를 불태웠습니다. 이듬해 5월 윤지충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함께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지만 위패는 만들지 않고 유교식 제사도 지내지 않았습니다. 문상을 온 종친들은 분노했고 그 소문이 조정에까지 전해져 큰 파문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이른바 ‘진산사건’입니다. 그리고 진산사건으로 인해 조선천주교 최초의 피의 박해인 ‘신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12월 8일(음 11월 13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되었습니다.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윤지충은 “만약에 내가 가장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배반한다면 살아서건 죽어서건 어디로 가겠는가?”라며 권상연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 천주교 역사 안에서 참수형으로 죽음을 맞이한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고전과 현대, 옛 것과 새 것,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삶을 살아가면서 자주 부딪치는 주제입니다. 누구는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고 누구는 많은 부분이 새로워진 지금이 좋다고 말합니다. 단순하고 정이 넘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많은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정답입니까?’라고 질문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없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지라고 결정해 놓은 일들에 대해 한 번 더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을 해보는 이들이 현명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혹시 나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을 박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생각이 옳고 당연한 것이며 다른 생각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우리에게 당연한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 이것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습ㅓ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