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가족들과 함께 잘 지내셨습니까. 새해를 시작하고도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난 느낌입니다. 어쩌면 예상하지 못했던 달갑지 않은 상황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자리하게 되면서 매일의 소식들로 혼란한 연초인 듯합니다. 저마다가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이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끄실지 그 거룩한 계획에 자비로이 의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가 다른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날로 매일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곳 성지의 겨울은 비교적 조용합니다. 지금의 시대적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날씨가 추워지는 만큼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의 발걸음도 조금은 뜸해지지요. 올 겨울을 시작할 때쯤 성지의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드렸었는데, 겨울이 깊어진 지금은 언제 내린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눈덩이들이 한껏 웅크리고 자리하고 있어 쓸쓸한 빈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추운 틈을 비집고 미사에 참례하고자 성지 대문을 들어오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들을 이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새삼 신기하고도 귀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위축되고 좁아드는 세파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사랑의 거룩함에로 귀를 여는 이들의 발걸음 하나하나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저마다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거룩한 땅에서 거룩한 말씀에로 귀 기울이는 모두의 소망이 하느님께로 피어오르는 기도가 되기를 바라며 매일 제의를 입고 미사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거룩한 말씀에 귀를 여는 제 자신은 아닙니다. 많은 시끄러운 소리들이 제 곁에 맴돌고 세속의 걱정들로 조바심이 들 때도 많습니다. 인간적인 관계들과 더 발전해 가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또 해 왔던 일들에 비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제약이 되는 처해 있는 상황에 이미 적응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도 돌아보면 아쉽습니다. 채워나가야 하는 것들에 막막하다가 빠져나가는 것들에 놀라며, 푸념하는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게 됩니다. 미약한 걱정들에 쉽게도 휘둘리는 우리네 부족함들이겠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당연한 일면이기도 하겠습니다. 피할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는 인간성, 받아들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영적이고 내적인 말씀의 이끄심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과, 절대 떼어놓고 별개로 여길 수 없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인간적인 삶의 자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은 다른 두 분이 아니십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인 시장 바닥에도, 심오하게 펼쳐지는 신학자들의 토론 자리에도, 성체성사가 드려지는 제단에도, 하루의 노고를 닦아내는 맛있는 식사 자리에도 같은 하느님께서 신비롭게 현존하시는 것이지요.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삶의 여정 그 어딘가에 서있는 내 자신이, 그러한 하느님을 바로 그 자리에서 찾아 나가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할 것입니다. 세속적인 걱정거리들이 없어짐으로써 찾아오는 거룩함이 아니라, 참된 인간성의 한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현존 방식에 참여함으로써 거기에 휩쓸리지 않게 되는 것, 올 해도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기억하고 노력해야 할 점이 아닐지. 다시 이 시점에 되새겨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인성(人性)을 취하신 것은 우리가 신성(神性)에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음을 떠올리며, 그 복됨을 이루신 순교자들께 여러분 모두를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 유일하고도 유례 없는 강생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분적으로 하느님이시고 부분적으로 인간이시거나, 하느님과 인간의 불분명한 혼합의 결과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참 하느님으로 계시면서 참 사람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6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