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시기가 시작되었다. 한 주, 한 주, 바뀌는 초의 색깔에 설렘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요즘처럼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사람들 마음이 어수선하기 때문에 더 예수님을 절절하게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동을 최소화하느라 또 봉쇄, 라는 걸 발동할 지도 알 수가 없다. 봉쇄는 단절이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만든다. 기쁘거나 슬퍼도 사람들은 같이 나누고 싶어 한다. 그것을 막는 것이 봉쇄다.
스산한 요즘, 여러 여건상 기쁜 소식이 더욱 간절하다. 대림시기의 기다림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많다. 반려견은 먹이를 주는 견주에게 잘 보여야한다. 견주의 반복된 학습을 잘 수행한 반려견은 어려움 없이 먹이를 받아 먹을 수 있다. 견주가 기다리라고 하면 얌전히 앉아 견주의 눈을 바라본다. 어떻게 하면 주인의 마음에 들어 더 많이 , 더 빨리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을지를 알고 있다. 주인의 뜻을 잘 다른 반려견은 원하는 대로 뜻을 이루게 된다.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대상의 뜻을 알고 있을지. 우리의 기다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한다. 아기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히 반갑고 기쁜 소식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이 육화되어 우리들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잉태를 하는 엄청난 신비를 보여주셨고 예수님의 행적을 사람들의 눈으로 보게 해주셨다. 반려견이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주인의 뜻에 따르는 것이 연상된다.
우리는 대림시기에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만을 위한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이 인류에게 베푸신 것처럼 너그러움을 가져야 한다. 하느님의 뜻에 맞춰 가다듬는 게 중요할 것이다. 지나온 일 년을 돌아보며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 말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타인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이 도드라져 보이려고 타인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는 계기로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 나를 가리지 않고 존중받아야 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한다. 존중은 사랑이다. 자신을 통회하는 대림시기가 지나면 모두를 존중하여 사랑을 나누는 성탄이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