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를 또 한 번 체감합니다. 가을이 가득 차 온통 갖은 색들로 물들었던 성지도 이제 그 모습은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눈으로만 보아도 조금 차갑게 보일만큼의 풍경이 외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스산함이 감도는 산을 바라보며, ‘아 또 다시 이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매일의 삶을 새삼스럽게도 다시 돌아보며 풍요롭게 마무리해야 할 때, 바로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마무리, 끝’ 이라는 표현들이 어울리는 시기이지요. 무언가 우리를 차분하게 만들어주고 때로는 심각하게? 진지함이 어울릴 듯한, 혹은 한숨짓게 만들거나 마음이 좁아들게 하는 말들이기도 하겠습니다. 지난 연중시기의 마지막 수 주 동안 독서와 복음으로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성지에 오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완성은 곧 그리스도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다는 것은 또한, 모든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는 우리 ‘삶의 승리’로 이어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에서 반복해서 맞이하게 되는 ‘마무리, 끝’의 때는, 덧없이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대한 한숨이나 근심들로 채우거나 혹은 더 큰 절망과 회의와 원망으로 맞이하게 되는 시기가 아닐 것이고, 그리스도의 힘으로써 우리 삶의 시련과 한계들에서 당당히 이겨냄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마무리, 끝’은 지금 마주하는 한 해의 끝자락에만 어울리는 말들이 아니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한 달의 끝에도, 하루의 끝에도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완성으로 채워질 수 있겠지요. 어쩌면 이 세상과 사람이 만들어낸 여러 기준에 의해 흔들리거나 다른 무엇들로 괜한 특별함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일상이지요. 우리가 오늘도 맞이하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시간. 매 순간마다 맞이하는 승리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바쁘게 돌아가는 매일의 일상이 버거울지도, 떠나지 않는 근심거리들에 머리가 아플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 누군가가 원망스러울지도. 아니면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누군가로 인해 가슴이 따뜻해질지도, 소소한 기쁨이 더해지는 나눔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무언가 특별한 지향을 품고 간절하게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누군가의 삶을 옆에서 바라보거나 간접적으로나마 듣게만 되더라도 삶의 오묘함을 체험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그러하겠지요. 아주 확실하게도 우리 삶에 보이지 않게 현존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오묘하고 신비롭게 이루어져 가는 나 자신의 일상의 하루도 마주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작지만 풍요로운 주님의 섭리를 가슴에 담아볼 수 있다면 또 한 번의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지의 모든 후원 가족 여러분, 2021년의 성탄을 맞으며 여러분 모두를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인간은 성령의 빛과 권능에 참여한다. 인간은 이성으로 창조주께서 정하신 사물들의 질서를 깨달을 수 있으며, 자기 의지로 참된 선을 향하여 스스로 나아갈 능력이 있다. 인간은 “진리와 선을 탐구하며 사랑하는” 데에서 자신의 완성을 찾는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0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