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을이 깊어가고 아름답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지면서 단풍 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모습이 단풍으로 아름답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작게는 나의 죽음의 순간을, 넓게는 세상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은 그에 맞추어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흠 없는 모습으로 당당히 설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의 길임을 잊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며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단풍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해 할 것입니다.
이번 달에도 지난달에 이어 <병인치명사적>에 수록된, 장주기 성인 유해의 이장에 대한 증언과 기록이 담긴 이치문 힐라리오의 보고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교(聖敎)는 행치 아니하오나 성교 일은 다 아옵고 죄인의 의부 동서 되는 안일삼이라 하는 사람과 죄인의 장인 최 안드레아, 합이 사공 넷이 오르고, 죄인의 3형제와 질서(姪壻: 조카딸의 남편) 이 바르나바와 조카 (이)영화가 배에 오르고 무덤을 파본즉 시체가 거의 썩고 이왕 여우가 침노한 흔적은 민(위앵) 신부 왼편 엄지발가락이 상하였으나 그저 붙어 있고 아주 떨어지지는 아니 하였삽고 냄새는 감당키 어려우나, 칠성판(七星板: 관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조각인데, 북두칠성을 본떠서 일곱 구멍을 뚫어서 칠성판이라 부른다.)은 그 칠성판으로 쓰옵고 베는 새로 바꾸어 가지고 염하오니 이때는 7월 13일(양력 8월 22일)밤이라. 다 하여 가지고 나선즉 또 날이 밝은지라.
급히 배에 올리고 수로 5리쯤 여수애(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에 있는 마을) 큰 강어귀 가서 있다가 바람이 일어나며 비와 뇌성이 대작(크게 일어남)하오니, 이때는 밤이라 다 겁을 내고 도로 가패(충남 보령시 대천5동에 속한 남곡동에 있는 ‘가포(佳浦)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라 하는 데로 두 번 쫓겨 들어와서 또 나가다가 솔섬(충남 보령시 주포면 송학리에 있는 섬)이라 하는 데로 쫓겨 밤에 풍랑을 겪어 거의 죽을 뻔 하옵고 아침에 밥을 시키고 (뱃)사공이 나서 보더니, “오늘은 더 큰 바람이 일어날 터이니 진작 녹안이뿌리(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가승구지 마을.)로 가라.” 하더니, 행선을 시작하매 바람이 크게 일어나 화살같이 달아나니, 수로 20리를 가서 녹안이로 가매 떠날 때 앉힌 밥이 겨우 끓었으니, 그 속하게 달아난 것은 가히 알 터 이옵고, 물에 떠 있기를 8일을 하고 집에 12일 만에 돌아온즉 김순장은 죄인의 집에서 죄인들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삽고, 신 회장도 한가지로 있사와 남포 서재골 담배밭 가운데(에) 광중(壙中: 시체를 묻는 무덤의 구덩이 속)은 넷을 파고 봉분은 하나를 만들 때에 산 주룡(主龍: 풍수지리에서 주산(主山)의 줄기를 이르는 말)으로 동남간으로 향하여 서서 마련하오면 좌편은 민(위앵)신부요, 다음은 안(다블뤼) 주교요, 그 다음 우편은 오(오메트르) 신부요, 그 다음은 장(주기) 회장이라. 장사하고 헤어질 때에 수합한 재물은 다 없어지고 국실 사람들(이) 올라갈 노비(路費: 노잣돈)가 없사와 남포 평바위골 사는 최이경이라 하는 사람은 최 요한의 8촌이라, 돈 일곱 냥을 내어 노비 하여 보내었고 그 후에 다 그 지방을 떠나 각처로 헤어져 사옵더니, 세전(歲前: 지난 해 1881년) 백(블랑) 신부 분부에 그 일한 사람들이 다 죽으면 나중에 산소를 잃을 염려가 있으니 죄인의 형(이) 이냐시오에게 분부하와 “면례(유해를 이장함)를 하라” 하옵기에, 금년(1882) 정월 21일(양력 3월 10일) 밤에 죄인의 형 (이) 이냐시오와 죄인과 조카 (이) 안드레아와 질서 이 바르나바와 김 안드레아와 조카 (이) 프란치스코와 토다리 최 서방, 합 일곱 사람이 한가지로 산소를 파 본즉 횡대(관을 묻은 뒤에 광중의 위를 덮는 널조각) 하였던 나무가 아래로 다 석어 없어지고, 뼈가 흙에 혼합이 되고 해골 위에만 횡대 쪽(조각)이 남아 있사와 저저히(살살) 조심하여 백골을 모아올 때에 흘릴까 조심하오나 적은 뼈가 다 삭아 없어진 것도 있사온즉 보매 혹 없어진 것도 있사오나 이는 다 삭아 없는지 혹 흙에 묻히어 잃은 지 자세히 모르고, 있는 것은 해골과 팔과 다리와 갈비뼈는 (주교와 신부) 각 위(位)를 분간하여 종이로 각봉(각자 밀봉함)하와 백(블랑) 신부께 바치는 사정으로 전후 일장 일을 아는 대로 종실(從實: 사실대로 따름)하와 기록하여 바치옵나이다.
이렇게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신자들의 정성어린 노력이 있었습니다.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으나 이치문 힐라리오는 형제와 친척들과 신자들과 함께 장주기 요셉 성인의 유해를 비롯하여 안 다블뤼 주교님, 민 위앵 신부님, 오 오메트르 신부님의 유해를 잘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유해는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었고 또한 순교자들이 순교한 이후 매장과 이장의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소상히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강 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