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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당리성지 신부님 글

장주기 성인 유해의 이장에 대한 증언과 기록 2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220

찬미예수님!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 그리고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는 하루가 선선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좋은 날씨처럼 고마우신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순례자님들의 마음도 맑고 청량해지기를 바랍니다. 성지는 지난 9월 초순에 4일에 걸쳐 활엽수 전지작업을 시행하였습니다. 긴 가지와 잔 가지들을 쳐내고 다듬는 작업을 통해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나무들이 바뀌었습니다.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노래를 부르시며 즐겁게 일하시는 한 작업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무를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며 좀 더 신경 쓰시며 작업을 하시는 모습에 요당리 성지도 더욱 소중하게 변화했습니다. 요당리 성지의 다른 부분들도 소중히 여기고 잘 보존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어 <병인치명사적>에 수록된, 장주기 성인 유해의 이장에 대한 증언과 기록이 담긴 이치문 힐라리오의 보고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치명하신 후 황(석두) 루가는 그 (일가) 사람들이 즉시 찾아가고 세 위 (신부)와 장(주기) 회장을 묻기는 사장(모래밭) 근처 갈마못(갈매못)이라 하나이다. (주기) 회장의 아들 ()노첨이라 하는 이가 내려와서 하는 말이 시체를 찾으려 경영(經營)하고 다래골 와서 물은즉 모르겠다하기에 왔노라하온즉 죄인(증언자 이치문 힐라리오)의 부친이 말하기를 그리하면 일을 시작하자하와 몇 사람과 의논을 하온즉 누구 대답이 어떻게 된 줄도 모르고 돈도 어디서 나서 쓴 줄도 모르고, 장노첨이가 데리고 온 사람도 대개 네다섯인 듯하나 그 사람도 돈을 얼마 가지고 온 것도 모르옵고, ()노첨이가 데리고 온 사람 중에도 똑똑히 아는 사람은 방시영이와 임중심이와 서 필립보뿐이요, 죄인의 식구와 죄인의 질서(조카사위) 이 바르나바 성여와 한가지로 가서 시체 묻은 곳을 4월 초8(양력 521)에 가 본즉

잔돌로 봉분을 쌓아 놓았기에 주막이 가까운 고로 소리 나게 못하옵고 손으로 차차 헐어들어 가온즉

시체 하나가 드러나기에 본즉 적신(알몸)으로 묻고 또 목은 각각 몸에 맞추어 놓고 칡으로 허리를 둘러매고 칡 틈에 나무로 패를 만들어 언문(한글)으로 쓰기를 오가(吳哥)하였기로 오(오메트르) 신부이신 줄을 알고, 또 다음에 안(다블뤼) 주교 시체가 또 그 모양이옵고, 그 다음은 민(위앵) 신부이옵고, 그 다음은 장(주기) 회장이라. 밤에 시체 모양을 본즉 빛은 희유스럼하옵고(희읍스름하다. 썩 깨끗하지 못하고 조금 희다) 물은 내왕하는 모양이옵고 냄새는 과(지나침)하지 아니하와, 시상(屍床)을 가지고 가서 올려놓고 마포(삼베)를 가지고 감아서 지개에 넷이 지고 나선 즉

장사하여 일시키는 곳이 먼 10리가 되는데 날이 밝아 위험한 모양인즉 공론이 아무 데나 사태(沙汰)난 데 묻고 가자하기에 죄인의 말이 못 될 줄로 말씀하고

(다블뤼) 주교 시체가 그 중 무거운 고로 죄인이 지고 앞서며 나만 따르라하와, 급히 대참에 일하는 곳으로 가서 묻을 때에 봉분은 하나이나 광중(무덤 구덩이)은 넷이옵고, 이 일을 할 때 주인(주동자)은 수청고지서 사는 죄인의 장인 최 안드레아이옵고 이 때 손자중(孫子仲)이가 왔으나 일 다 하고 쉬는 날

와서 다녀가옵고, 신창 남방재(충남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서 살던 김백원이라 하는 사람은 죄인의 처고모의 사위가 되옵는데 홀아비로 다니다가 죄인의 처가에 와 있는 고로 한가지로 일은 하였사오나 ()삯은 주었사오며 그 후 얼마 지낸 뒤에 산소에 가본즉 여우가 구멍을 뚫은 고로 죄인의 부친이 돌로 막고 와서 또 들리는 말이 혹시 수상한즉 그저 둘 수 없다하여 홍산 도암골서 사는 김순장에게 그 말을 하온즉 김순장의 말이 내가 돈은 얼마든지 ()당한다하더니, (공주) 국실 점(사기나 옹기를 굽는 곳)에 가서 그 동네 신 회장과 한 가지로 내려올 때에 돈 40냥을 가지고 왔으나 김순장이 그 돈 40냥 중에서 얼마 당한 줄은 모르고,

죄인의 형 () 이냐시오가 죄인의 셋째 형 () 끼수와 한가지로 오 좌수라 하는 집에 가서 돈 50냥을 얻어 왔사오나 이 돈은 나중 번() 7월에 쓴지 처음 4월에 쓴지는 모르고, () 끼수가 돈 40냥 대고 죄인의 부친이 27냥을 대어 가지고 수청고지로 가서 외()인의 배를 삯을 내되 두 물거리(뱃길 왕복)에 삯 40냥으로 작정하였다가 나중 여러 날이 되매 20냥을 더 주었사오며, ()사공() 그 동네서 사는 서성학이 형제(인데 그)는 죄인의 처편(처가쪽) 일가요 최 요한의 계모의 손자라.

 

이치문 힐라리오는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식별하고 수습작업에 들어간 비용과 수습작업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당시 신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경비를 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전하게 수습해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기록에 담겨 보고서로 신앙의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강 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