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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골성지 신부님 글

11월 묵상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1-01 조회수 : 362

+그리스도 우리의 빛!

어느덧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섶을 여미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찬바람 앞에 몸의 온기를 지키듯, 하느님께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사랑과 열정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보호 안에서 늘 따뜻하고 행복한 날들 보내시기를 빕니다.

 

가을이 되면, 많은 것들이 변합니다. 그 많은 것들 중에 바람 소리도 있습니다. 이를 도시에서는 경험하시기 어려울 텐데, 여기와 같은 산 속에서는 더 분명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여름의 바람에는 물을 한껏 머금은 부드러운 잎사귀가 바람을 타며 내는 시원한 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여름의 바람을 청량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와 달리 가을의 바람에는 점점 메말라 가는 잎사귀가 바람에 부딪히며 내는 텅 빈 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질수록 이 소리는 점점 더 커집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가을의 바람 소리에서 처량함을 느끼고 쓸쓸하고 고독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고 이맘때쯤이 되면, 심적으로 많이 지치고 에너지도 부족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결실에 대한 강박도 생기고 한 해를 이제 마무리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바쁘고 분주해지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때문에 잠시만 숨을 골랐으면 합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달릴 길을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메마르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 메마르게 된다면, 아무리 이전과 같은 소리를 내고자 해도 텅 빈 소리를 내게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 가져도 정작 자기 자신을 잃게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고민하고 애써 찾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힘 있게 하고 촉촉하여 마땅하고 합당한 소리, 곧 생명과 구원, 기쁨과 영광을 말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희망입니다.

 

재미있게도 11월 위령성월은 우리에게 바로 이를 찾고 발견하게 하는 달입니다. 물론 자신의 지난 삶과 다가올 죽음, 장차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에 대해 묵상하고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이를 알았으면 합니다. 이 모든 묵상과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희망 때문에 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돌보시지 않는 우리의 마지막은 죽음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맡겨진 묵상과 기도들은 우리를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무장시키며, 희망을 북돋우는 활력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묵상하고 기도하였으면 합니다. 곧 죄와 죽음, 심판과 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이기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희망 안에서 묵상하고 기도하였으면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메마른 소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희망이 엮는 새롭고 신비로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에게는 기쁨과 확신, 연옥의 영혼들에게는 위로와 행복이 될 것입니다. 이는 또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 또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희망으로 진리와 구원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옳으심과 영광을 찬미하는 소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달과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자신을 가꾸고 돌보며 완전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러니 우리에게서 생명과 구원, 기쁨과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희망을 찾고 그것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온 존재가 하느님과 세상을 기쁘게 하는 새로운 노래가 되게 합시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