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위령성월을 보내며, 죽음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마주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깊이 되새겨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 올립니다.
우리 성지는 을묘박해 ·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17분의 순교자를 모시는 성지입니다. 순교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기리는 거룩한 곳이지요. 2014년에 시복된 17위 순교복자들께서 시성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지와의 인연은 20여 년 전 성지 순례 중의 숲속 십자가의 길 기도였고, 그 기도가 저를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한 계기였지요. 그리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성지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저를 이곳으로 불러 아주 작은 봉사를 하도록 이끌어주고 있어요. 그 시간들이 제 신앙 여정에 버팀목이 되었답니다.
요즘은 감염병으로 순례가 자유롭지 못해 아쉬움이 커요. 그럴수록 저의 희망은 더욱 커지기만 하는군요. 순례객이 많이 오시는 날에는 1,700여명이나 되었는데요. 그런 날은 성지가 꽉찬 듯, 순교자들이 빙그레 미소로 답하시는 듯했지요. 어서 이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 자유롭게 순례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아울러 성지에 오면 순교자들의 후손들을 위한 기도도 절로 나옵니다. 극심한 박해로 신앙을 지키시기 어려웠다고 전해지니, 어디에 계시든 조상님의 지고지순한 순교정신을 신앙유산으로 지켜나가시는 은총의 복된 삶을 누리시길 간구합니다.
성지는 본당과 달리 봉사자 모집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려움 중에도 모인 참 좋으신 형제 자매들과 만남도 제겐 귀한 인연이었지요. 한분 한분 모두 보물이라 여기며, 함께 하셨던 봉사자님들 언제나 성지 잊지 않으시고 기도해 주시겠구나, 믿는 마음에 즐거워진답니다.
우리는 서로 주님을 향한 여정 중에 만나는 이들이며 우리는 서로에게 천사로 파견 받았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하고 불안한 시대에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립비서 4,13) 말씀대로 오직 주님께서 함께하셔야 가능함을 고백하며 낮고 작고 겸손한 자가 되어 순교자들과 성지에서 언제까지나 머물기를 소망하며.....
글_골롬바회 김민주(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