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말고, 나와 하느님을 신뢰하세요.
가을밤입니다.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11월 인사 올립니다.
11월 ‘위령성월’ 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계신 분들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달입니다.
멕시코 전설에 의하면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죽은 영혼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통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로 가신 부모, 형제, 자매, 친구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한 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생존 서바이벌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 최고 인기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한마디로 나 외에는 모두 적이고 모든 적을 죽이면 엄청난 돈이 생긴다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죽기를 작정하고 하는 게임입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며 전 세계가 싸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북이 대치하고, 정치인들은 서로 잘났다고 싸웁니다. 또한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친구 간에 싸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제발 싸움을 멈추십시오.
어린 시절 많이 했던 오징어 게임은 한 번도 게임으로 불린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오징어 한판 하자’ 말하지 결코 ‘오징어 게임 하자’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있고, 돈과 물건이 항상 오고 갑니다. 하지만 놀이에는 승자와 패자도 없고, 상금이나 상품도 없습니다.
삶은 축제이고 놀이입니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고 즐기면서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싸움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싸우지 않으면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웁니다. 무엇 해야 된다, 무엇 해서는 안 된다, 하며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결코 자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지에 살면서 배운 것입니다.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없고, 술과 싸워 이길 수 없고, 풀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리고 “악인과 맞서지 마시오” 말씀하십니다. 이는 타인과 자신과 싸워서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어르신이 주인공 이정재에게 우리는 ‘깐부’ 라고 이야기 합니다. 깐부는 짝꿍이고, 동지라는 의미입니다.
진화 심리학에서 보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타인과 협동하고, 뭉치고, 나누고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일리 있는 연구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싸우지 말고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과 동물, 식물 들에게 마음을 열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심리학을 보면 인간이 외적 자극에 반응하는 것을 연구하는 행동주의 심리학과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특히 정신질환을 연구하는 정신 분석이 있습니다. 정신 분석의 대가로는 ‘프로이드’와 ‘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상적인 인간의 성숙을 연구하는 ‘인본주의 심리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심리학자는 ‘매슬로’입니다.
매슬로는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생리적인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와 자기 초월 욕구라는 6가지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도 채우지 못한고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을 합니다. 이유인 즉은 우리 가슴에서 하느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신학자이고, 철학자인 ‘폴 틸리히’는 ‘존재의 용기’라는 책을 통해서 실존주의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 즉, 어떻게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용기는 비존재의 실제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자기 존재의 긍정입니다. 쉽게 말하면 죽을 줄 알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틸리히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운명과 죽음의 불안’, ‘공허함과 무의미함의 불안’, 그리고 ‘죄의식과 정죄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위에 계신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하느님 위에 계신 하느님이란 불안 속에서 하느님이 사라져 버린 때에 나타나신 하느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운명과 죽음의 불안은 우리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즉, 영혼 불멸로 해결하고, 공허함과 무의미함의 불안은 세상의 의미가 아닌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 해결하고, 죄의식과 정죄에 대한 불안은 하느님은 과거의 하느님도 아니고, 미래의 하느님도 아닌 오직 오늘의 하느님이라는 것,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의 과거를 모두 잊었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나는 그것이(행동,말)이 최선이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용서의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통해 해결했으면 합니다. 여하튼 이 모든 것은 매슬로가 말하는 자아실현과 자아 초월 그리고 틸리히가 말하는 모든 불안을 이겨내고 한 인간,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존재의 용기는 자신에 대한 확신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일 것입니다.
11월 한 달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코로나 19’ 조심 또 조심하세요. 그리고 때가 때인 만큼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꼭 기억하고, 기도해 주십시오
2021년 11월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양근 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