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알고 계신 것처럼 한국 천주교회는 1년여 간의 희년을 살아왔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를 기념하여 지난 2020년 11월 29일(대림 1주일)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사도좌의 인준을 받아 희년(禧年)을 선포하였던 것이지요. 그 희년의 기간이 이 달 27일까지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코로나 시대에 경축하는 희년이다 보니 아무래도 제한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던 시간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교회가 함께 모이고 발맞추어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제약될 수밖에 없었기에 비교적 차분하게(?) 보낸 시간인 듯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희년 기간 동안 수원교구가 발표한 기념 순례지로 교구 내 모든 성지가 지정되었던 터라 우리 남한산성 순교성지에도 그동안 많은 순례객들이 다녀가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교통이 편리하고 다녀가기 좋은 조건들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희년을 사는 교우들에게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성지에 방문하여 ‘기억’하고 ‘기도’하도록 하는 교회의 지침이 조금은 더 의미를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가 독려하고 가르치는 지향점과 교회 구성원들의 실제 삶의 모습이 같은 쪽으로 방향지어졌다고 할까요. 어려운 시대 상황을 이겨내야 했던 희년살이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움직임들을 통해서도 ‘의미’로서 남는 그 이후의 날들이기를. 희년을 마치며 기도로 모두와 나누어 봅니다.
희년이라는 잔치상에는 그 잔치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음식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성경 말씀과 교도권의 가르침 안에서 만들어지고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 희년 잔치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사(Charisma)입니다. 은사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많은 선물로, 신약 성경에서는 ‘은총의 선물’ 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이 은사의 선물은 희년을 지내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대사(Indulgence)의 은총으로 주어지게 되지요. 그래서 전대사와 부분대사 가운데 전대사의 은총이 사도좌의 인준으로 허락되고 희년 선포와 함께 교구 규정으로 신자들이 지켜야 할 전대사를 얻기 위한 지침이 마련되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기쁨과 완성의 해를 보내며 그야말로 속죄의 선물이 주어지는 엄청난 특혜임이 분명합니다. 잔치에 참여하는 이라면 값없이 주어지는 이 선물을 당연히 맛볼 수 있고 또 받아야겠지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주 가치있는 행위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실제 성지에 오시는 분들 가운데 저에게 전대사의 은총에 관하여 묻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이번 희년은 끝나가지만, 앞으로도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질 대사의 은총에 앞서 근본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도 분명 있겠습니다. 그것은 잔치상에 풍부한 잔치 음식에만 마음이 쏠리기보다, 잔치 주인은 누구이며 왜 이 잔치가 벌어졌는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써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이 잔치 음식을 먹으며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앞서 필요한 일일 것이고, 배만 채우지 않고 잔치를 베푸는 이의 뜻도 채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둘 다 중요하건데, 먼저와 나중 그 순서가 핵심이겠지요. 죽은 이를 기억하게 되는 시기에, 대사의 은총을 청하신다면 잠시 돌아봄의 시간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모든 분들과 함께 기도에 힘을 보태 연옥영혼들을 살피시도록 하느님께 마음 모으며 성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이 희년에 ····· ‘너희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너희 곁에서 허덕이면, 너희는 그를 거들어주어야 한다. 그에게서 이자나 이익을 거두어서는 안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 형제가 너희 곁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레위 25, 8이하 참조)
글. 김유곤 테오필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