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빛!
점점 맑고 높아지는 하늘과 태양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 금빛 들판과 알알이 영그는 과실들은 우리의 마음을 즐겁고 흥겹게 합니다. 이 즐거움과 흥겨움이 여러분 안에서도 넘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눈물을 기쁨으로, 슬픔을 행복으로, 수고를 결실로 바꾸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계획의 놀라움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때에 이 글을 읽게 되시는 분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고만하던 중에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신부님 방금 안수 받았는데, 또 받아도 되요? 아침에 성체 모셨는데 또 모셔도 되요? 미사 전에 고해성사 받았는데, 지금 다시 받아도 되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단순히 ‘예나 아니요’로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청하는 이의 내적 상황과 상태, 우리가 지켜야 할 법규와 규칙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선과 사랑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사제들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다고 하여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부정적인 대답을 받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싶은 마음과 생각이 든다면, 오히려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가?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는가? 성사의 은총을 따르고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길 바라는 이유는 어떠한 계기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성사에 더욱 준비되는 경우도 있지만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과 생각을 따르는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도움과 힘을 얻고 앞으로 더욱 나아가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더 마음과 믿음이 약해져 불안과 두려움만 커지게 됩니다. 믿음으로 자신 안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채우고 지혜로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일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을 구하고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지혜로 하느님의 뜻과 일이 자신 안에서 완성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은 물론,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내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며, 참된 자유와 기쁨, 희망과 충만함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이는 순교자들이 어떻게 혹독한 현실 안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는지,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영광스럽게 변하게 하였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도하고 두려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하느님의 마음에 온전히 의지하였습니다. 곧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와 삶을 단순한 반복으로 그치지 않고 변화와 쇄신과 영광을 위한 원동력이 되게 합니다. 또한 자신들을 채우신 하느님께 위로를 받고 자신들이 의지하는 하느님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을 두렵고 불안하게 하려던 세상을 놀라고 떨리게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불안보다 믿음을 따르며,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기도와 성사 생활, 봉사와 사랑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을 새롭게 하고 굳건하게 하는 힘과 은총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우리가 맞게 되는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이 때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여정을 묵상하며, 겸손과 순명으로 그 구원에 더욱 깊이 일치하는 때입니다. 곧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더 없이 밝게 비춰주는 때입니다. 그러니 이 때를 잘 보내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더욱 성숙시킬 수 있도록 믿음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더 의지합시다. 그리하여 모든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물며,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결실들을 차지하도록 합시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