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당리성지는 복음이 언제 전파 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유박해(1801년)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활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아울러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두 번의 박해와 순교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였습니다. 이런 유서 깊은 곳이었기에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습니다. 장주기(요셉.1803-1866) 성인과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복자’로 시복된 장 토마스(1815-1866)의 출생지이자 신앙의 터전이었고, 이곳 출신 순교자로서 하느님의 종 지타대오, 림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여(가를로),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 등이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교회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고 끝내는 순교하신 민극가(스테파노,1787-1840) 성인과 이곳에서 공소회장을 맡으며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하신 정화경(안드레아,1808-1840) 성인이 활동하셨던 곳이며,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셨다가 순교하신 영베르 범(라우렌시오,1796-1839) 성인과 이분의 피신을 돕다가 순교하신 손경서(안드레아,1799-1839) 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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