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 요충지로 외세의 침략에 맞선 결사항전의 역사를 통해서도, 천주 신앙을 증거하다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모범을 통해서도 여러모로 지킬 의지로 가득한 곳이다. 일찍이 신해박해(1791년)때부터 신자들이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1801) 때에는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복자 한덕운 토마스는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준 일로 체포되어 참수되었으니 처음으로 연령회장 직분을 수행한 분이시다. 복자의 모범을 현양하여 성지는 연령을 위한 기도성지로 가꾸어져 오고 있다.
이어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66)에 이르기까지 약 300여명에 달하는 교우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였는데 순교자들의 행적은 안타깝게도 일부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白紙死)라는 형벌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 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법전에도 없던 잔혹한 형벌이었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복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6명에 이른다.
주요순례지
잡혀 온 신자들이 배교를 강요당하며 심문받았던 포도청과 순교터가 된 형옥터, 신자들이 군사들의 훈련 교보재가 되었던 연무관, 순교자들의 시신이 버려진 시구문 계곡, 동문 밖 한덕운 토마스의 치명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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