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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천진암성지

기본정보

  • 031-764-5953
  • 031-764-5954
  • chonjinam-hl@casuwon.or.kr
  • (우)12716,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 (우산시 500번지)

기관단체 소개

천진암성지는 세계교회 역사에 유례없이 평신도들이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여 천주교 신앙을 깨닫고, 열성적으로 전하여 교회를 세우며, 끝까지 목숨을 바쳐 천주의 존재를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신 창립선조들의 유해를 모신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입니다.


500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긴 대학자로서 천진암강학에 참여하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여유당전서』 권철신 묘지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그 옛날 기해년(1779년) 겨울에 천진암에서 강학이 있었는데 이벽이 설중에 주어사에서 도착하여 촛불을 밝히고 경서를 담론하였다(昔在己亥冬講學于天眞菴走漁寺李檗雪中夜 至張燭談經).” 한편, 페레올 고 주교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서 비밀리에 20년 이상 선교활동을 했던 제5대 다블뤼 안 주교는 『조선순교사비망록』에서 “조선천주교회의 진정한 기원은 이벽의 강학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천진암강학은 본래 녹암 권철신 선생이 주도하여 성현들의 경서를 공부하며 심신을 수양하는 유교 선비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광암 이벽 성조께서 1779년 한 겨울밤에 찾아와서, 중국에서 들어 온 천학 서적을 통해 깨달았던 우주만물의 기원에 대한 진리를 소개하였고, 바야흐로 천주교 신앙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선비들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신앙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마침내 순교하였으므로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이라고 일컬어 지고 있습니다.


천진암에 자주 찾아왔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훗날 “절은 허물어져 옛 모습이 없어졌다(寺破無舊)”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천진암 암자는 없어졌고, 동네 농부들은 그곳을 논으로 만들었으며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1960년대에 남종삼 성인의 후손인 남상철 회장은 다산의 기록에서 천진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불교 사찰 목록을 조사하여 마침내 동네 노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천진암 터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 기록을 토대로, 변기영 몬시뇰은 1978년부터 천진암 터 토지를 매입하여 성역화사업을 시작하였고, 옛날 천주교 신앙 진리를 찾고 실천했던 그 자리에 비로소 한국천주교 창립선조들의 묘역을 조성하였습니다.


한국천주교 창립선조 묘역에 모셔진 5위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종 광암 이벽 요한 세례자(1979년 포천에서 이장), 녹암 권철신 암브로시오, 직암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981년 양평에서 이장), 만천 이승훈 베드로(1981년 인천에서 이장), 복자 선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1981년 화성에서 이장) 등이며, 한국 교회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거룩하게 순교한 이분들의 시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교구설립자 묘역에는 정하상 바오로 성인과 유진길 아우구티노 성인, 정철상 가롤로 복자의 묘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한국천주교 창립선조 가족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