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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및 선교단체

가르멜여자수도원

기본정보

  • 031-762-5951
  • 031-762-5952
  • trinityocd@hanmail.net
  • (우)12716,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1

기관단체 소개

서울 가르멜 여자수도원은 1940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관상 수도원으로 성모영보와 아기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주보로 모시고 있습니다. 현재 20명 남짓한 수녀들이 기도와 전례, 고독과 공동체 생활, 노동과 쉼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지향한 성녀 데레사의 카리스마를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 가르멜의 역사 - 순교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지다.

한국 천주교회가 순교자들의 피로 비옥해진 땅에서 자라났듯이, 서울 가르멜 여자수도원도 설립자 수녀님들의 순교의 얼 위에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다섯 명의 서울 가르멜 설립자들 중 성체의 마리 메히틸드 수녀님과 아기예수의 테레즈 수녀님은 한국전쟁 도중에 순교하여 2015년 ‘하느님의 종’으로 공식 선정되어,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임 가밀로 신부님

일제 강점기, 한국에 가르멜 수도원이 생기기를 오랜 세월 염원하며 기도해온 충북 감곡 성당의 임 가밀로 신부님은 프랑스에 리지외 가르멜에, 가르멜 수녀원 설립을 위해 수녀님들을 한국에 보내주기를 요청하였고, 이 소식이 에르(Aire sur A'dour) 가르멜에 전해졌습니다. 이에 응답하여 1939년과 1940년에 프랑스 에르 가르멜에서 4명, 벨기에 비르통(Virton) 가르멜에서 1명의 수녀님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서울 가르멜 혜화동 건물

한국의 첫 가르멜이 수도인 서울에서 시작되기를 원한 서울교구장 원 라리보 주교님의 뜻에 따라, 서울 혜화동 신학교 안의 부지에 작고 소박한 수도원을 신축하였고, 1940년 4월 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성모 영보 이동축일)에 서울 가르멜 수녀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아직 많은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가난한 수도생활이었지만, 다섯 설립자 수녀님들은 열성을 다해 가르멜의 기틀을 마련하고, 많은 지원자들을 받아들여 어머니다운 지극한 사랑으로 양성했습니다.


설립자 수녀님들과 초기 지원자들

수도원은 차츰 꼴을 갖추어갔고, 봉쇄의 고독 안에서 수녀님들은 세계 제2차 대전과 대동아 전쟁 등 격동의 시기에 세상과 교회를 위해, 특별히 한국과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와 관상 생활을 바쳤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설립자 다섯 수녀님들은 국외로 빠져나갈 기회가 있었으나, 한국인 수녀님들과 함께하고자 서울에 남기로 하고 마지막 비행기를 포기하였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섯 수녀님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피랍되었습니다. 강제 이송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한 수도자로서 기도생활의 의무를 다하며, 주변의 외국인 포로들을 따뜻한 애덕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여름옷과 허름한 신발을 걸치고 변변치 못한 음식도 겨우 주어지는 온갖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평양을 거쳐 압록강변 국경지대 중강진으로 이어진 악명 높은 ‘죽음의 행진’ 도중에 초대 원장 마리 메히틸드 수녀님과 2대 원장 테레즈 수녀님은 순교하여 북녘 땅에 묻혔습니다.


한편, 한국 수녀님들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수도생활을 계속하다가 휴전이 되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납북되었던 세 수녀님들은 포로교환으로 본국인 프랑스로 송환되었다가 그 중 두 수녀님이 서울로 귀환, 한국 수녀님들과 기쁨의 재회를 하였습니다. 두 분은 서울 가르멜에서 여생을 마치기까지 20여년을 수도자다운 충실함과 겸손으로 귀감이 되어주었습니다.


서울 가르멜의 설립자 수녀님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 열렬한 사랑과 신뢰로써 응답한 그분의 정배들이었으며, 딸 수녀들에게는 지혜로운 스승이요 더할 나위 없이 자애 깊은 어머니였습니다. 이제는 그 후배들이, 한국 교회와 한국 가르멜을 위해 기도와 삶을 주님께 바치고 역경 중에서도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한 그분들의 거룩한 얼을 이어가는 수도여정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