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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수기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신뢰하여라” (조기동 요한)|

  • 조기동(kdchou)
  • |조회수 : 288
  • |추천수 : 0
  • |2019-05-28 오후 4:18:08

신앙체험수기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신뢰하여라” (조기동 사도요한)

1958년 태어난 나는 1983년 관면혼배를 하고 1985년 세례를 받았다.세례식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많이 울었다.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지금까지의 내 죄를 모두 용서해주신다는 것.앞으로도 용서해 주실 거라는 것.이제부터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그런 생각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내 인생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운 적은 아직까지 없다.(주님,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주님께서 저를 부르신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아멘.)


그러나 나는 고통의 사람이었다. 노점상 부부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때 지역 어린이 신문에‘착한 어린이’로 뽑힌 적이 있었는데 기자가 물었다. 장래 소원은? 대통령입니다. 왜요? 가난한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고교 3학년때와 재수기간를 통해 열심히 공부했으나 대학에 떨어진 것이 무척 괴로웟던 모양이다. 1978년 죽기로 하고 약방을 돌며 수면제를 모았다. 알맞은 곳을 찾아 하염없이 걷다가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십자가 위의 피뢰침도 눈에 띄었다.나를 맞이한 것은 키작은 초췌한 목사님.질문을 쏟아냈다.하나님을 믿는 교회에서 십자가 위의 피뢰침은 왜 세웠습니까

노점상인 우리 아버지도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나도 하루에 4시간 밖에 자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저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습니까. 이것이 그분의 뜻입니까.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왜 아직도 세상은 엉망입니까.그분은 우리에게 관심이나 있습니까.

오랫동안 목사님은 묵묵히 듣고 계셨다.“청년, 나도 명색이 주의 종인데 지금 아내가 많이 아프네 작년에는 신축중인 교회에서 불이 났었네.... 그냥 한 달만 더 살아보게.” 그리고 나에게 수면제를 달라고 해서 발로 밟으셨다.“차비좀...”서울로 돌아왔고 후기 대학에 진학 했다.

군포는 제2의 고향이다.1989년부터 살기 시작했다. 1996년 성모의 밤에 “ 성모님께 드리는 글”을 응모하여 군포성당에서 본당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부총무, 교육분과장도 하였다. 오늘까지 교리교사 22년, 레지오 19년을 하고 있다. 부총무를 할 때 자주 성당 청소를 하고 메뚜기를 잡으러 가기도 하고 고기를 구어 신부님, 입교 대상자,냉담 교우, 본당교우들과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요즈음은 레지오에서 공동 텃밭을 하고,할머니들을 위한 빨래 봉사, 이웃들의 집을 수리하는데 보조하기도 한다.군포 본당에서 한 때는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입교를 한 적도 있고 미사 집계표를 만들어 미사에 참례하기 전에 구역별로 함에 넣도록 하여 세대별,구역별,연령별 미사 참례율을 집계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관심이 생긴 것은 1980년이었다. 서울역앞에서 도동 양동의 성매매 여성들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다가 학생들이 데모를 하다가 끌려가는 상황에서 나 혼자 공부를 한다는 것이 미안해서 데모에 합류했다. 수배를 당하고 붙잡혀서 고문을 당했다.석방되어 집에서 누워 라디오만 듣고 지내다가 강제 징집되어 군에 갔다.군에 있는 동안에 무기정학이 제적이 되었다.등록금내고 최루탄만 마신 대학시절이었다.

사람의 아들이여, 당신은 광화문앞 경찰과 대치하여 애국가를 부르던 저희들과 함께 하셨나요? 화실에 모여 광주사태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고 집집마다 뿌리던 우리의 분노속에 계셨나요?

신앙체험 셋

젊은 시절 사는 게 힘든 내 소원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었다.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다.어느날 미사전 내가 성당에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수녀님께서 나에게 오셨다.
" 형제님 이 할머니를 화장실에 모셔다 드리세요."
나는 얼떨결에 할머니를 부축하고 화장실로 향했다.할머니는 걷는 것도 몹시 힘들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할머니를 업었다.갑자기 등이 뜨뜻해졌다.할머니께서 참지 못하고 똥을 싸신 것이었다.화장실에 도착해 큰 덩어리를 털어내고 씻었지만 할머니 옷에도 내 신사복에도 똥이 너무 많이 묻어있었다.
"나 집에 갈래"
나는 할머니를 업고 성당을 나왔다.성당밖에 주차해 놓은 내 차로 갔다. 신문지를 깔아 똥이 조금이라도 덜 묻게 신경을 썼다. 하지만 차 안은 똥냄새가 그득했다.
묻고 또 물어 마침내 할머니가 사시는 다가구 주택에 도착했다.
할머니의 얼굴을 뵈었다.지극히 부드럽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마치 "나다"하고 미소지으시는 것 같았다.
그순간 무엇인가 내 마음 꿰뚫고 지나갔다.
소원대로 그 분을 만나 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분은 가난한 할머니 안에 계셨다.

새벽 미사에 가는 길이었다.사는 게 힘들어서 터벅터벅 걸어서 갔다.
달빛은 교교한데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그 때 음성이 들려왔다.
밖에서 들려왔는지 안에서 들려왔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들었다.
"요한아, 요한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아느냐.“
나는 이슬이 맺힌 눈으로 대답하였다.
"예,주님 저는 압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부족하지만 제 믿음을 받아주십시요."

가다가 다시 한 번 음성을 들었다." 요한아, 요한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성령세미나를 받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들 발 닦아주기’ 와 성령안수이다.

세째주 숙제가 "가족들 발 닦아주기"였다. 처음에는 숙제를 하려고 했다가 아내에게 면박만 받았다. "웬수 덩어리, 평소에 잘 해" 그래서 네 번째 주에 밀린 숙제를 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양해를 구하고 텔레비젼을 껐다.세숫대야에 너무 뜨겁지 않게 따뜻한 물을 담았다. 목에 수건을 걸고 소파에 앉아있는 아내에게로 갔다.
"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또한 온 누리가 새워지리이다."
"주님 제가 아내에게 입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소서.
제 마음속의 상처도 치유하여 주소서. 다시는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주님의 평화를 주소서."정성스럽게 수건으로 발을 닦고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눈물이 나서 혼자 조용히 방에 들어가 엎드렸다.

내가 아팠을 때, 생활이 어려웠을 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방황했을 때 항상 내 옆에 있던 아내에게 따뜻하게 위로는 못 할 망정 왜 그처럼 이쁘지 못한 말을 했던가.

여보 미안해 용서해줘.다시는 작은 상처도 입히지 않도록 힘껏 노력할게.

주님, 제 죄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께서 항상 들으시고 보시면서 가슴아파 하셨다는 것을 제가 믿습니다.
성모님, 제가 다시는 예수님 마음과 성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않도록 빌어주소서.

성령안수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나도 성령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까’ 의심을 하면서도 다른 형제들처럼 성령하느님을 느끼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버릴수가 없었다.
안수를 받는 목요일에는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미리 수요일 저녁에 고해성사를 했다. 그리고 목요일에는 목욕을 하고 기도를 열심히 드렸다.

(주님 제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를 기억하시지요.
처음에 저는 불평을 했습니다.
"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시련을" 그리고 주님과 협상을 하려고 했습니다.

" 살려주시면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 다음엔 두려운 마음 뿐이었습니다.

" 용서해주세요,용서해 주세요."

마지막엔 결국 "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그 때 주님께서 주신 말할수 없는 평화.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제가 아팠을 때나 주님을 거부하며 방황할 때나 항상 주님께서 제 옆에 계셨음을 제가 믿습니다.그러나 제 믿음은 부족하오니 성령안수를 통하여 제 부족한 믿음을 채워 주십시요. 확신을 더해 주십시요.그리고 성당에 갔다.

뒷자리에 앉으면 잘 아는 사람들끼리 앉아 눈치만 볼까봐 다섯번째 줄에 앉았다.

오소서 성령님. 성령안수가 시작되어 입을 열고 알렐루야를 외우기 시작하였다.

옆에 앉은 형제는 곧 심령기도를 시작하여 줄기차게 계속하였다.

왜 나는 안 되지. 주님 제가 주님께 전심전력으로 매달리게 해주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나는 통성기도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고 더욱 정성을 다해 알렐루야를 외쳤다. 오소서 성령님. 어서 오소서. 봉사자가 안수를 하시고 조금 있으니 온몸이 뜨거워 지면서 눈물과 함께 심령기도가 내 혀를 주체할 수 없도록 큰 소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제 체험을 통해 형제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JESUS CHRIST ALIVE

예수 그리스도님, 살아계십니다.

성령님,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997년에 곡절 많은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암석을 파쇄하는 기계를 홍콩에 수출하게 되었다. 환율이 수출하기에 좋아서 바쁘게 움직였는데

2000년 뇌출혈이 왔다. 구로동에 있는 중앙유통단지에 있는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머리가 찢어질 것 처럼 아팠다. 집이 군포이기에 산본 원광대 병원으로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119를 타고 삼성의료원으로 가는데 많은 생각이떠올랐다. 이대로 가는 것인가.이것이 인생인가.삼성의료원에 자리가 없어 강동성심병원으로 갔다.서둘러 가는 통에 처음으로 비싸게 산 운동화를 두고 갔다.

열네 시간 수술을 하고 깨보니 두손과 두 발을 묶어 놓았다.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간호사가 그냥 누워서 하라고 했다. 변과 함께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것 같았다.

중환자실로 옮기고 보니 15명 중에서 10명 정도가 의식이 없다. 밤이면 심폐소생술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 잠을 잘 수가 없다.어떤 자매님이 의식이 없는 남편의 뺨을 때리고 있다." 정신좀 차려, 이 인간아 정신좀 차리라구" 의식불명 7년째. 이 곳은 전쟁터다.

그래서 두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다.의사가 여러군데 수술을 했는데 후유증이 없는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일주일도 안돼 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해 무모하게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 따서부터 내릴때까지 그리고 화가 난 바이어의 차를 타고 그의 사무실에 갈 때까지 묵주기도를 했다. 상담은 다행히 잘 끝났고 비장의 무기로 가지고 간 다른 아이템 하나를 슬며시 꺼내 놓았다가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되었다.

하느님은 왜 고통을 허락하실까

하루에 4시간씩 자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하느님은 왜 노점상 하시는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대학입시에 계속 떨어지고 죽으러 가는 길, 왜 십자가가 눈에 띄었을까

데모를 하고 경찰서에 잡혀가고 강제징집을 당하고 제적을 당했다.재입학을 하고 취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했으나 적응이 쉽지 않았다.

1980년 데모와 함께 시작된 조울증. 술을 먹고 교회등에 쓰러져 자고 직장을 11곳이나 옮겼다.사업을 시작하고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뇌출혈로 열네 시간 수술을 했다.
인생. 한 방에 훅 가는 것이구나.
수술 후에도 후유증으로 몇 번 119를 탔다.

그리고 아내의 다발성 골수종과 15일만의 사별,다시 혼인한 아내의 유방암.고통은 진행형이다.

주님,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 때문에 저를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아아 내 머릿속으로 또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꼭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어린 나이에 성당 활동도 제법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굳이 이런 고통이 없어도 부부가 충실히 신앙 생활을 했을 텐데.새벽 군포 성당 성모상 앞에서 얼마나 울었던가.아침이면 설겆이,요리, 회사일이 기다리는 일상이 싫어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어떤 날, 아내의 묘지가 있는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에 비는 내리고 참 서럽게 울었다 많이 울다가 무언가 커다란 손처럼 생긴 것이 이 나를 덮는 것처럼 느껴졌다.주님은 나를 쪼개고 깍고 없애서 어떤 존재로 만들고 싶으셨을까

내가 받은 은총이면 다른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텐데
나는 성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건강한 가족,평범한 사람이길 바랐다.
바닥이다고 느꼈을 때 더 깊은 바닥이 왔고 비우고 나니 또 비울 것이 있었다.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무엇을 하고 계신가.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이제 태풍은 지나가고 조금 평화로워졌다. “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5) 
“예수님, 저를 당신께 의탁합니다.”

이 성구를 자주 외면서 일을 한다.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

내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치우시는 것 같다..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필요하니까 주셨을 것이다.하지만 주님,이제 평화로웠으면 합니다. 
앞으로 제발 평온한 길을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저는 약한 사람입니다.

네 존재가 바로 서면 모든 것이 바로 선다. 막으신 것도 그분, 뚫으신 것도 그분

약은 죽음만큼 쓰지만 환자에게는 그 약이 필요했나 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

지금 힘들고 지금 걷기도 어려운 A야, 안다.안다 네마음, 내가 안다.

남편과 외아들을 짧은 기간에 잃고 슬퍼하는 B야,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랴. 미안하다. 미안하다.미안하다.

혼자서 세상 어려움을 견디는 외로운 너에게 깊은 위로와 격려를 담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두려워하지 마라. 용기를 내어라”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보고싶은 나의 어머니 마리아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아버지는 만나셨나요.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이제 10년이 넘었네요

공원묘지에 함께 누워 계시는 두 분... 어머니,자식들 키우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어머니가 저 때문에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 가득합니다.데모한다고 천방지축 날뛰다가 경찰서 신세를 졌을 때,제가 많이 아팠을 때,둘째 형수가 세상을 떴을 때, 아내가 세상을 떴을 때,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셨을 때 그래도 어머니는 잘 사셨습니다.칠십이 넘기까지 일을 하시며 육남매를 키우셨구요 화도 거의 내지 않고 사셨고 늦게 세례를 받고 견진까지 받으셨어요.여목사인 큰 형수도 있고 큰 형 둘째 형 둘째누나 모두 개신교 신자지만 '성당에 다니는 애들이 그래도 낫다'고 하시며 교리를 받으셨지요.어머니께서 천주교 신앙안에서 돌아가신 것이 이처럼 큰 위안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어머니 저는 잘 지냅니다.하느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건강하고, 제 밥벌이는 하고 있습니다. 손녀딸은 기초과학관련 연구소에서 손자부부는 초등학교 교사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예쁜 손녀들도 생겼습니다. 저는 여전히 교리교사로 레지오 단원으로 활기차게 살아가고 제 아내도 교리교사로 기타 봉사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불러 꼬깃꼬깃한 백몇만원을 주시던 생각을 하며 눈물짖습니다.어려운 살림에 드실 것 안 드시고 병원에 가지 않고 모은 돈을 꺼내놓으신 생각을 하면... 어머니..매일 전화할 때 마다 " 막내야 사랑해 ""저도 사랑합니다. 어머니" " 막내야 정말 사랑해" "저도 정말 사랑합니다.어머니" 길고 긴 사랑에 찬 대화를 나누었던 우리 사이. 돌아가신 뒤에도 이어지리라 믿습니다.어머니를 보고 사랑을 배웠습니다.어머니가 계셨기에 세상이 무섭지 않았습니다.어머니를 만났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제가 죽으면 심판을 받겠지요. 그러나 그 심판관이 우리 엄마같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저는 하느님 하고 부르면 엄마 생각이 떠올라요. 주고 주고 주고 마지막 것까지 주고 떠난.....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려운 삶이었지만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돌보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은 세월 순수하고 충실하게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작은 일꾼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추억과 선행과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그때까지 제 안에 주님의 마음을 닮은 불씨를 잘 간직하게 보살펴주셔요.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아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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