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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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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 조회수 : 107
  • |추천수 : 0
  • |2019-11-09 오전 7:27:55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키엘 47,1-2.8-9.12 
1코린토 3,9ㄴ-11.16-17
요한 2,13-22 
 
< ​예수님은 내리막길에서만 보인다 >


옛날 어떤 곳에 성인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의 생활은 깨끗하고 덕이 되어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를 그에게 내려 보내 상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 하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그대가 기도하기만 하면 무슨 병이나 다 낫고 죽은 자라도 살릴 수 있는 권세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성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병을 다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일은 하느님께서 친히 하셔야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그 은혜를 사양합니다.” 
 
천사가 물었습니다.
“그럼 그대가 말만하면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권세를 드리려는데 이것은 어떻습니까?” 
 
성인은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감히 그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니 성령께서 하셔야 할 일이지 어찌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천사는 “그렇다면 그대는 무슨 은혜를 원하시오?” 라고 물었습니다.
“예,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어떻든지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되 그 선을 행하는 것을 제가 알지 못하고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그의 겸손에 감동하여 그의 그림자가 뒤로 비칠 때 그 그림자에 들어가는 모든 병자와 죄인들이 고침을 받고 새 사람이 되게 하는 은혜를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항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면서 그것이 기도라고 착각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서 행하던 기도가 그런 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하는 집’이란 ‘자신이 봉헌되는 집’과 같습니다. 
자신이 봉헌되어야 하느님께서 주인으로 사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버린 유다인들을 질책하십니다. 
 
채찍으로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성전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성전은 자신이 봉헌되고 있어야합니다.
부모님의 사진은 오래 되었어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사진은 사실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부모님의 모습이 새겨져있다는 것만으로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도 당신을 모신 성전이 된 사람을 버리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장사하는 집이 되어버린 사람은 하느님의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가져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하느님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가져다니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이미지를 지워야합니다.  
 
성전의 제대는 자신을 봉헌함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려오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 제대와 같은 곳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영광을 받고 내가 이익을 보려는 마음을 그 제대 위에서 바치고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는 내용이 모두 자기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쫓아냈던 예루살렘 성전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잘 나가던 하버드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돌보기 위해 작은 복지원의 원장으로 가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 있는 신학자 중의 하나이며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던 학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는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아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돕고 행동 교정을 하는 등의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 일상을 선택하였습니다.  
 
모두들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신부님은 몇 개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예수 이름으로’라는 책을 써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그 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을 추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신동이라고 추앙되고 하버드교수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박약아 아담 군을 만났을 때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복음서에 나타난 진정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신앙을 통하여도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 성전 안에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바쳐져야합니다. 
내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려는 마음만 남아야합니다.  
 
나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추구하면 다른 모든 봉헌은 결국 나의 이익을 위해 하는 위선적인 장사가 됩니다. 
나를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나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이 봉헌되고 있는지 항상 살펴야겠습니다.


내리막길을 통하여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