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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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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조회수 : 111
  • |추천수 : 0
  • |2019-09-18 오전 8:30:04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티모테오 1서 3,14-16
루카 7,31-35 
 
< 오늘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풍기셨던 따뜻한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고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 한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로부터 ‘먹보요 술꾼’이라고 불렸다는 것이, 술을 많이는 아니고, 아주 ‘쪼끔’ 좋아하는 제게,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동시에 이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너무나 인간미가 넘치고 자연스러운 분이셨다는 것이,
또한 제 마음을 크게 흐뭇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전형적인 고위 관료들처럼 목이 뻣뻣하거나 고자세가 아니셨다는 것, 조금도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으셨다는 것, 그저 물흐르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롭게 사셨다는 것,
너무나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태생적·후천적으로 삐딱하고 경직된 시선을 지니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토록 인간미 넘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메시아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빌려 탄생하지 않으시고, 구름을 타고 등장하셔야만 했습니다.  
 
구질구질한 저잣거리가 아니라, 잘 청결하고 정돈된 구중궁궐에서 탄생하셔야만 했습니다.
세리나 창녀, 죄인들과 어울려서는 절대로 안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잔치집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몇일씩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나오는 음식마다 싹쓸이하셨습니다.
밤 늦도록 죄인들과 어울려 포도주 잔을 기울이시며, 이런 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시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눈에 심하게 거슬렸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그들은 이렇게 투덜거렸던 것입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루카 복음 7장 34절) 
 
예수님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던 시기,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꼴불견 그룹이 둘 있었는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쌍으로 붙어다니면서, 안그래도 식민통치 아래서 고통받고 신음하던 동족들을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그들에게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들은 위선적인 신앙과 언행 불일치,
그리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한 노골적인 배척과 박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끝끝내 거부한 나머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동족 유다인들에게까지도
구원으로 향하는 문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가장 열심하고 충실한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이, 그토록 급격히 바닥으로 추락한 원인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삶과 신앙에 대한 진지하고도 일상적인 성찰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죄와 오류 모순 투성이였던 자신들의 내면과
영혼으로 향했으면 정말 좋으련만, 그런 노력은 티끌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예수님 약점 잡기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들의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은 100퍼센트 예수님을 올가미에 옭아매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위선 덩어리요 비굴함 투성이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치졸하고 부끄러운 모습과, 지금 난리들을 치고 있는, 구린내가 진동하는 웃기지도 않는 모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거짓이나 위선이라고는 조금도 없으셨던 진실 그 자체셨던 예수님 눈에 그들의 갖은 비리와 위선, 비굴함과 천박함은 절대로 비켜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크게 혐오하십니다.  
 
일부러 보란듯이 게걸스럽게 주린 배를 채우시고, 포도주 잔을 높이 쳐드시며,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신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일관되게 유지하셨던 예수님의 얼굴 표정은 어떠하셨을까요?
유추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에서는 따스하고 다정한 인간미가 철철 흘러 넘쳤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 앞에 그냥 마주 앉아 손을 잡고 같이 울어주셨을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는 사람과는 한데 어울려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을 것입니다.  
 
고민 투성이인 청년과는 밤늦도록 곱창집에 앉으셔서, 소주잔을 같이 기울이며 그의 고민을 다 들어주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목덜미가 뻣뻣한 제왕이나 독재자,
몰지각한 정치인들 같지 않으시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요.  
 
마치 모기떼들처럼, 요즘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모 정당 정치인들처럼 표리부동하지 않으시고, 그저 한없이 부드럽고 진실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가 풍겼던 그런 따뜻한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고 있습니까?
경직되지 않고, 뻣뻣하지 않고 물흐르듯이 자연스럽습니까?
위선적이거나 이중적이지 않고, 진리와 겸손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까?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