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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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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조회수 : 49
  • |추천수 : 0
  • |2019-09-12 오전 6:39:41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콜로새 3,12-17 
루카 6,27-38 
 
< 참 겸손이란 인생의 금맥 >

산책로를 따라가며 묵주기도를 드리다가 수풀 속에서 날아오르는 반딧불이 무리를 만났습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유년시절을 필두로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회한의 눈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누구나 한 두 번씩은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미성숙한 탓에 저지른 과오나 충족되지 못한 부분에 대한 후회, 안타까움에 흘리는 눈물을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완전히 성취한 꿈보다 못다 이룬 꿈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정복한 산보다 아쉬운 눈물 머금고 발길 돌린 산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완성, 완전함이란 단어보다는 미완성, 불완전함이란 단어가 더욱 친숙합니다. 
 
환한 대낮보다는 어스름 저녁이, 빛나는 성공보다는 참담한 실패가, 
충만한 기쁨보다는 썰물 같은 슬픔이 더욱 정겹게 다가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앞에 늘 탄탄대로만 펼쳐주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꿈같은 봄날만 허락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끔씩 칠흑같이 깜깜한 밤을 체험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드시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주시는 것입니다. 
 
심연의 슬픔,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감, 깊은 상처...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꼭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역설의 진리는 말이 쉽지 깨닫기 어렵습니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밑으로 내려서기’입니다. 
적당 선에서가 아니라 한없이 깊고 깊은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서기입니다.
내려가는 도중에 우리는 그 알량한 자존심, 웃기는 우월감, 마지막 남은 ‘나’까지도 양파 껍질 벗기듯이 훌훌 벗겨버리고 나서 심연의 동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순간 ‘참 겸손’이란 인생의 금맥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작업을 해보라고 우리 각자에게 권고하십니다.
예수님의 권고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너무 지나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속도 밸도 없는 천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것 훌훌 벗고 알몸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