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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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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 조회수 : 108
  • |추천수 : 0
  • |2019-09-11 오전 8:27:33

최고의 긍정심리학자들이 장기적인 행복에 미치는 외부 세계의 영향은 10%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기적인 행복의 80%는 우리의 뇌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스트레스 없이 평온하게 살아간다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1967년 과학자 토마스 홉스와 리처드 라헤는 삶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스트레스를 점수로 매겨 구분하는 작업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배우자 사별을 통한 스트레스 점수는 100점, 이혼은 73점, 실직은 45점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은 몇 점일까요? 기쁘고 좋은 일이니 스트레스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자그마치 50점이나 나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배우자 사별, 실직, 결혼, 이혼 등은 우리 주변에서 참 많이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겪은 모든 분이 스트레스로 인해서 커다란 질병을 얻었을까요?

사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스트레스에 잘 견디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지속시켜주는 엔진의 역할을 이 스트레스가 담당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최고 강도 문제가 아니라 지속시간이 중요합니다. 회복될 전망이 있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우리 몸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강한 사람도 어느 순간에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가난, 굶주림, 슬픔, 미움을 당함…. 이를 통해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스트레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기에 하느님의 손길에 의탁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에 묻혀서 풍요와 만족을 누리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하느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의 풍요와 만족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합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만을 내세우면서 욕심과 이기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고 호소만 하지 마시고, 그 스트레스 안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