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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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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 조회수 : 139
  • |추천수 : 0
  • |2019-04-25 오전 9:03:31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사도행전 3,11-26
복음: 루카 24,35-48 
 
< 믿음의 시너지 효과 >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은 골프의 불모지였습니다. 
그러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프로선수권대회와 미국 여자오픈 대회에서 잇달아 우승을 합니다. 
 
바로이듬해에 김미현 선수가 혜성처럼 출현했고 뒤를 이어 세계 골프계에 돌연 한국 여자 선수들이 선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11승, 2009년에는 12승, 2010년에는 10승을 기록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자메이카 육상선수들이 무려 1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인구가 겨우 28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섬나라가 인구가 100배나 더 많은 미국을 돌연 앞지르게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케냐 선수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라톤을 석권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역도계에서는 250kg이 인간의 한계라고 여겨졌습니다. 
혜성처럼 나타난 러시아의 슈퍼헤비급 역도선수 바실리 알렉세예프의 신기록 행진도 250kg에서 멈춰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심리학자가 그의 트레이너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역기 위에 251kg을 올려놓고 알렉세예프에게는 249.5kg이라고 말하세요.” 
 
알렉세예프는 예전처럼 251kg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한 달 내 다른 선수 4명도 연거푸 250kg의 벽을 깼습니다. 
알렉세예프 자신도 그때부터 7년 동안 무려 80차례나 세계기록을 경신했습니다. 
 
1마일 경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십 년간 내로라하는 세계최고의 선수들이 1마일(1609m)을 4분 안에 돌파해보겠다며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의사들은 4분 안에 들어오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폐와 심장이 파열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옥스퍼드대학의 의대생 로저 배니스터가 4분 벽을 깨버리자 한 달 안에 다른 선수 10명이 4분 벽을 깼습니다. 
1년 후에는 27명이, 2년 후에는 300명의 선수들이 무더기로 4분 벽을 돌파했습니다. 
 
[참조: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나와 똑같은 사람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김상운, 21세기 북스] 

사람은 자신이 자기 자신을 정한 한계 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를 자존감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자기충족예언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스스로가 평가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이 되어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 믿음을 깨면 자신도 믿음의 한계가 바뀝니다. 
그리고 그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한 사람이 믿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믿게 됩니다. 
 
‘1 더하기 1은 2보다 크다’라는 것을 시너지 효과라 합니다. 
두 사람이 각자 하는 것보다 협동해서 하면 각자 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각자의 믿음이 하나로 모아질 때 그 각자의 믿음이 퍼져서 가져올 수 있는 효과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세상 누구도 죽었다가 스스로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믿지 못하니 실제로 아무도 부활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당신이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죽음도 이기실 수 있다고 믿으셨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으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나 그 밖의 여인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부활한 예수님을 사도들 앞에서 증언하였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사도들도 조금씩 믿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도들에게 나타나 그 믿음이 퍼져나가게 하지 않고, 이미 퍼져있는 믿음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모이게 하셨고 그 믿음을 그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개인들의 믿음이 아닌 ‘교회의 믿음’을 형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이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같은 믿음을 지닐 때 믿음은 더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사람은 소속되고 싶은 본능이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환경과 믿음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콩을 쪼개는 더 높은 기술을 습득한 침팬지 무리에 있던 침팬지가 그보다 열등한 기술을 가진 무리에 속하려고 자신이 가진 높은 기술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1950년대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실험을 통해 아주 간단한 문제도 온 공동체가 다 틀리게 대답하면 자신도 뻔히 아는 답을 틀리게 대답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를 ‘상황의 힘’이라 합니다.  
 
그 믿음이 선하고 강력할수록, 그리고 그것을 믿는 이들의 수가 많을수록, 그 무리의 믿음은 더 넓고 빠르게 확장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 부활에 대한 믿음이 몇몇의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부활은 새벽에 하셨지만 사도들에게는 거의 맨 마지막에 밤에 나타나십니다. 
사도들은 낮 동안 예수님을 본 많은 이들의 증언만 들어야했습니다. 
이는 부활신앙이 성직자들의 신앙이 아닌 교회의 신앙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본당의 신앙은 본당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의 신앙이 모아진 신앙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은 또한 성당에서 만날 수 있는 한 할머니의 믿음입니다.  
 
나의 작은 부활체험들이 모여 교회의 믿음을 형성하고 그것이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탄생을 위한 선교의 힘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체험들이 교회 안에서 공유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러한 체험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거나 자신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오늘 사도들 앞에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함께 나누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믿음들이 모여 교회의 믿음을 형성하고 또 누군가가 교회 안에서 그 믿음을 전수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교회에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의 믿음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