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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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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 조회수 : 56
  • |추천수 : 0
  • |2019-04-24 오전 9:28:29

어떤 사람이 “나는 화초하고 맞지 않나봐. 그 어떤 화초를 키워도 다 죽네.”라고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잘 키워보겠다면서 ‘난’을 구입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난’ 키우기가 제일 어렵다면서 말렸지만, 이 어려운 것을 키우면 자신과 화초와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또 죽고 말았습니다. 실망하는 그에게 어떤 사람이 선인장을 선물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고 햇빛에 노출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력이 강하다는 선인장까지 죽고 만 것입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른 친구들은 이 사람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의 상처를 입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실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말합니다. 

“선인장은 죽기도 어렵다는데, 그 어려운 것을 내가 해냈어. 나는 정말로 대단한 것 같아.”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실망하고 절망하는 쪽이 아닌, 긍정적이고 희망의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무엇인가를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에 어떤 상황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작가이며 동시에 의사인 일본의 와다 히데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언가를 달성하는 사람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해도 된다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사흘째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시체가 사흘이 지난 다음에 해체되기 시작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다시 부활을 기대할 수 없는 포기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실망과 절망의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 어리석은 자들아!”라면서 성경 전체에 나타난 당신에 대한 말씀을 계속해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전히 부정적인 마음으로 실망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빵을 나누어주실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빵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절망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지만,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통해 다시 살아나 희망을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타오르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실망과 절망의 부정적인 마음을 태워버린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으로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