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원교구 - 참여마당
  • 교구안내
  • 알림마당
  • 참여마당
  • 간행물
  • 인터넷방송
  • 로그인회원가입
  • 참여마당
  • 오늘의 묵상
  • 성경이어쓰기
  • 상담게시판
  • 자유로운글
  •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 앨범게시판

오늘의 묵상

  • HOME > 참여마당 > 오늘의 묵상

2월 1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 조회수 : 140
  • |추천수 : 0
  • |2019-02-11 오전 9:00:23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 6,53-56 :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예수께서 겐네사렛 땅으로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예수께 한결같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찾아왔다. 수많은 병자들이 자기의 병을 치유 받기 위해서 모여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예수께 모여들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인간의 절박한 요구, 사람이 줄 수 없는 무엇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러한 은혜를 받고도 결국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동조한 그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결국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이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을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분으로 이용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복음에서와 같이 수많은 군중들이 자기 필요성에 의해 예수님을 찾는 것을 결코 비웃을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이 그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기계적인 하느님으로 만들어 놓고 그분을 섬기고 따른다고 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만들어 놓은 우상일 수 있다. 
 
그 우상은 나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듯이 우리 안에 잘못 가지고 있는 하느님 상이 무너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신앙을 버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신앙을 올바로 받아들인 모습이 아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편의를 위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그 기계적인 하느님은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하느님은 진정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세인가? 또 친구와 친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이용하고 또 도움만 받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나 않는지? 신앙을 받아들이고 성당에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해서는 어떤가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기계적인 하느님으로 만들어 놓고 참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는 않는지 반성하면서, 우리 자신은 이제 예수님을 필요로 하고 찾으면서도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이 아닌, 신앙으로 인해 자신이 변화하고 또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조그마한 실천으로부터 나와야하며 거기에서 참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나 자신이 완성되어 가는 삶이어야 한다. 이러한 삶이 우리 가운데 조금씩 실천되도록 끊임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 나가야 한다.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은 먼저 나 자신의 조그마한 것이라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