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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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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_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 조회수 : 22
  • |추천수 : 0
  • |2019-01-12 오전 9:33:35


요한 3, 22-30(주님 공현 후 토)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립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줍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에서 세례를 베푸셨다’(요한 3,22 참조)는 보고로 시작됩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유일한 본문입니다. 그리고 뒤에 4 2절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베푼 것으로 소개됩니다. 아마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 중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세례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의 성격에 관한 논쟁을 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정결례의 관점에서 질문합니다. 그러니 그 당시의 세례는 나중에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초대교회에서 행하게 되는 세례, 곧 성령을 통해 죄의 사함을 받고 새로운 신적 생명으로 탄생하는 삼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와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세례의 성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주어지는 계시가 중요함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분으로, 계시를 통해 오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이어서, 자신과 예수님을 동시에 증언하면서, 그리스도의 현현을 드러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9-30)

 

신랑 신부는 성경적 표상입니다. 곧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신부를 표상합니다. 초대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았습니다(에페 5,21-33). 그러니 신부인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차지임을 표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신랑으로 드러내줍니다. 구약성경의 <아가서>는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신부인 교회와의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라는 말은 그분만이 교회의 신랑이시며, 민족들의 구원의 동반자임을 말해줍니다. 

 

한편,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9-30)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고, 신랑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결코 신부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주시며(요한 15,15 참조),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이토록, 우리는 그분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고, 함께 깊이 믿기에 예수님과 서로 친구가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 친구들에게 당신 신부인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깊은 우정과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토록, 친구를 깊이 신뢰하고 존중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친구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그리고 당신께서는 친구에 대한 그 사랑, 그 신의를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몸소 드러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분명 우리의 친구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신랑의 친구인 우리는 신부인 교회를 차지할 수는 없지만, 교회를 친구의 신부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우리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의 사랑도 받고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