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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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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2010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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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03 오후 4:25:30
 연중 제23주일     2010년 9월 5일.  


루가 14, 25-3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려는 사람은 부모, 처자,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부모, 처자, 형제자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의 화법에 미워한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집착한다는 뜻이고, 미워한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처자, 형제자매라는 혈연과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여준 삶의 방식이었고, 초기 신앙인들도 그렇게 살면서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초기 순교자들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그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가족이나 당신 자신에게 집착하였으면, 십자가는 없었을 것입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가족이나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였으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신앙을 증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신앙인은 신앙을 위해 큰 희생도 각오한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망대를 짓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계획성 있게 행동한다는 말과, 전쟁터에 나가는 임금은 치밀한 계산과 준비를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신앙인이 되는 것은 일시적 기분이나 체면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중하게 계획하고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하는 헌신(獻身)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인간이 애착하였던 인연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말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던 새로운 실천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던 사람들이 그들의 실천을 기록하여 남긴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가족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가족에게만 집착하는 사람은 큰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모에게만 집착하는 아동은 학교에 가도 적응하지 못합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직업인으로 적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족에게만 집착하는 사람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합니다. 창세기는 결혼에 대해 말하면서 “사람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배우자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된다.”(창세 2, 24)고 선언합니다.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모두 불행합니다. 태아가 성숙하고도 모태를 떠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모태를 떠나 자기가 살 세상을 만나고 거기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면서 그 생명은 자라고 성숙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며 살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루가 10, 29-37)를 우리는 잘 압니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본 사제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현재 사제로서 또 레위로서 누리고 있는 인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자신이 이미 가진 인연들을 잊고, 자기 앞에 새롭게 나타난 사람, 곧 강도 맞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가 이미 가진 인연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연에 몰두합니다. 과거의 인연에만 집착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는 미숙함에 머무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자기 앞에 던져진 새로운 생명을 위해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이 병든 이를 고치고,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에게 용서를 선포한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베짜다 못가의 병든 이를 고쳐놓고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요한 5, 17).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과거의 인연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인연에 충실한 것은 십자가를 지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나 한 사람의 안일과 행복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기의 삶 안에 하느님이 살아계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기적 안일(安逸)을 넘어서, 하느님이라는 바다가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하는 일입니다. 그 하느님은 우리의 생존을 베푸신 분입니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분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노력할 때, 하느님은 우리 안에 바다와 같이 출렁입니다.


가족과의 인연은 좋은 것이고, 은혜로운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기 위해 베풀어진 인연이고 또한 버팀목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명이 바다와 같이 내 안에 출렁이면, 휩쓸려 버릴 수도 있는 버팀목들입니다. 부모님도 떠나시고, 선배들도 떠나고, 친구들도 떠나갑니다. 어느 날 나도 떠나면서 내 생존을 위해 버티어 주던 모든 것이 나와 헤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바다와 같으신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의 일이 당신 안에 파도가 되어 출렁이며 일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으며, 바다이신 하느님이 당신 안에 파도를 일으키며 일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하느님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것이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믿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우리를 버티어 주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새로운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예화는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인연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버려서 하느님의 큰 생명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비롭게 행동하고, 용서하면서 하느님의 큰 생명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장차 우리가 버리고 떠날 것에 집착하며 삽니다. 가족과의 인연에 갇히고, 가진 재물에 발목을 잡혀 제자리걸음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우물만 알지, 하느님이라는 바다를 만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미 주어진 인연을 넘어서 하느님이라는 바다를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작은 파도가 되어 출렁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고 살리는 작은 파도들이 우리 주변에 출렁이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