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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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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 조회수 : 62
  • |추천수 : 0
  • |2020-02-16 오전 7:41:29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오늘 독서는 율법과 그 율법을 표현하고 있는 계명들에 관한 주제가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시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복음과 율법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율법은 복음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율법이 본래의 근본정신은 잃어버리고 형식적인 것만 남아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형식주의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제1독서: 집회 15,15-20: 불경하게 되라고 하신 적이 없다. 
 
법은 인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으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인간은 잘못할 때도 그의 행동은 자율적이고 인격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이다.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17절) 여기서 말하는 생명과 죽음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윤리적 개념이다. 
 
생명은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법을 받아들여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은 그 하느님의 뜻을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하는 좌절의 한 형태를 말한다. 여기서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은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항상 하느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있어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지으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다.”(20절)고 하셨기 때문이다. 
 
복음: 마태 5,17-37: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복음에서 법이라는 것은 그 법이 인간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변화시키는 그 본질적 의미를 알아듣고 살 때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이 “사랑하라.”는 적극적인 계명으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계속 죽일 수 있다.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 자신이 충실하고 진실하라는 계명으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거짓 맹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법이 변화되면 그 법은 이미 복음이며 은총이 된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안에서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 인해 충만한 의미를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됨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17-18절) 여기에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기지 말고 실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라고 권고하신다.(19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시나이 산에서의 모세보다 훨씬 위대한 분이심을 입증하려 한다. 모세는 하느님의 대변자였지만, 예수님은 그 법 가운데 어떤 것을 수정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말씀하신다. “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21.27.33.38.42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은 바로 그 계명을 주신 분이시며, 사람들에게 결정적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는 계시자이며 하느님이신 분이시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율법의 근본적인 의미를 해석해 주심으로써 인간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드러나게 해 주셨다. 이제 율법은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해주는 은총의 복음으로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하는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21-22절) 여기서 선과 악은 마음속에 있으며, 형제를 무시하거나 그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이미 그를 죽이는 것이다. 즉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그를 떼어냄으로써 그를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예물을 바치려 할 때에 원한을 맺고 있는 형제와 화해하라고 하신다.(23-24절 참조) 주님 앞에 참된 제물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사랑과 용서로써 마련되는 것이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27-28절) 여기서도 악한 욕망, 욕정과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생겨나는 악을 비난하신다. 우리의 눈이나 다른 지체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이혼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모세의 이혼장은 간음을 허락하는 것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 법을 폐기하신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32절) 그러니 악의 공범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드려라.”(33-37절) 맹세는 이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쓰이지 않고 이웃을 불신하는 데에서 쓰이게 되면 형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도 믿지 못하는 이중적인 거짓 맹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스스로에게 충실하기를 요구하신다. “예!”가 됐든 “아니오.”든 입술로 말하는 그것이 마음속에 똑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37절) 
 
이러한 법은 명령이라기보다 복음의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완성하러 오신 율법은 율법주의나 전통적인 관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이 복음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엄격한 것 같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끌어주는 은총에 의해 그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도 주기 때문이다. 
 
제2독서: 1코린 2,6-10: 감추어져 있던 지혜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7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직 성령에 의탁하는 사람만이 그 지혜를 체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덧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8-10절)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고 있기 때문에(로마 8,2-4 참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율법을 실현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율법을 가르치실 때 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은총으로 가르치시며,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배운 것을 성실하게 실행할 마음을 주시고 또한 실제로 실행하도록 하신다. 즉 그분의 가르침은 하고자 하는 본성적 능력만이 아니라 원의 그 자체와 원의의 활동까지도 도와준다.”(성 아우구스티누스, De gratia Christi et de peccato originali, in PL 44,359)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깨우쳐주신 율법의 근본정신을 삶으로써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8)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 되어 행복을 누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하여야 하겠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