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원교구 - 참여마당
  • 교구안내
  • 알림마당
  • 참여마당
  • 간행물
  • 인터넷방송
  • 로그인회원가입
  • 참여마당
  • 오늘의 묵상
  • 성경이어쓰기
  • 상담게시판
  • 자유로운글
  •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 앨범게시판

오늘의 묵상

  • HOME > 참여마당 > 오늘의 묵상

1월 1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조회수 : 174
  • |추천수 : 0
  • |2020-01-11 오전 8:25:09

1월 11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 우리가 겸손해질수록 >

예수님 공생활 초기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유명한 논쟁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하여 ‘세례 원조 논쟁’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논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원조 논쟁’은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때로 법적 투쟁까지 불사합니다.
장충동이나 신림동, 춘천이나 양평 같은 지방에서 아직도 원조 논쟁은 치열합니다.
한쪽에서 ‘원조 ○○동 족발’이라고 크게 간판을 내겁니다.
그럼 건너편 가게에서는 ‘진짜 ○○동 족발’이라고 맞대응합니다.
그 다음 집에서 내거는 간판은 이렇습니다. ‘완전 진짜 ○○동 족발’ ㅋㅋㅋ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와 관련해서 원조는 단연 세례자 요한이 분명했습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이 주도한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갱신운동은 전 국민적,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얼마나 범국민적이었던지 세리와 창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까지 몰려와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막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님의 세례 운동은 세력 면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비교가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스승들인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그분들의 제자들 사이에서 알력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례자 요한 제자들의 볼멘 목소리를 통해 상당한 긴장상태가 있었다는 것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표현이 꽤나 정중하고 완곡하게 들리지만 사실 세례자 요한 제자들의 심기는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을 스승 세례자 요한을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요르단 강은 우리 영역인데, 세례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원조인데, 이게 뭡니까?
손님들 다 저리로 몰려가고 있는데, 뭔가 스승님께서 손을 쓰셔야 되는 것은 아닙니까?’ 
 
그 때 세례자 요한의 태도에 우리의 시선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향해 ‘그래 더 이상은 두고 볼 수가 없다. 뭔가 대비책을 마련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례자 요한은 오래 지속된 논쟁을 한 번에 잠재우는 말 한마디,
정말이지 기가 막힌 한 마디 말을 던집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요한복음 3장 28절)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장 30절) 
 
세례자 요한이 평소 지니고 있었던 극단의 겸손이 돋보이는 선언입니다.
참된 겸손의 덕이 어떤 것인가 묵상해봅니다. 
 
그저 난 아니다, 난 부족하다, 난 형편없다며 무조건 뒤로 빼는 모습이 겸손은 아닙니다.
자신의 신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겸손의 덕의 출발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은 대단한 겸손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요란한 박수갈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창조주가 아니라 창조물, 주인이 아니라 종,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파견한 사람이 아니라 파견된 자라는 명확한 신원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 교회는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극도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교회가 그분으로 인해 불어온 쇄신의 바람으로 인해 제2의 프란치스코 운동을 바탕으로 겸손과 청빈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다방면에 걸쳐 탁월하고 출중한 사목자라 할지라도 이 겸손과 청빈의 덕이 결여되었을 때 우리는 받아놓은 점수를 다 깎아먹습니다. 
 
우리가 고급 브랜드로 치장을 하고 높이높이 올라갈수록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칭송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릴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질수록, 더 가난해질수록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하늘나라를 발견할 것이며 그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목이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