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족 여행으로 태국에 다녀왔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해외에 나간 것이지요. 더군다나 부모님을 비롯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음식까지도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 그때 정말로 저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쌀국수입니다. 워낙 국수를 좋아하는 저였기에 아주 맛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국물에서 심한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 쌀국수를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바로 ‘고수’라는 풀 때문이었습니다. 음식에 화장품 냄새 나는 풀을 넣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치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거의 25년 전의 일이지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신부들과 종종 베트남 식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습니다. 그런데 “고수 빼고요~~~”라고 말하지 않고, “고수 많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고수와 쌀국수가 입에 함께 들어왔을 때의 맛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고수가 있기에 쌀국수의 맛이 배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1999년의 저는 고수를 즐겨 먹는 지금의 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맛의 취향이 이렇게 바뀝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단정 지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정답일 리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이 ‘참’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열린 마음이 있어야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너머에 있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당시에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설명해주시지요. 즉, 하늘 나라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지금 삶에서 하늘 나라를 매번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 작습니다. 너무 작아서 ‘무슨 씨앗이 이렇게 작아?’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자라면 그 작은 씨가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나무로 변합니다. 누룩 역시 마찬가지로 ‘이렇게 적은 양으로 무슨 변화가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밀가루 서 말 속에 아주 적은 양만을 넣어도 온통 부풀어 오릅니다.
겨자씨만 가지고 큰 나무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누룩만을 가지고도 부풀어 오르는 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도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 결론 내는 것이 아닌,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지혜만이 하느님 나라 안에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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